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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보라! 솔개는 날고 물고기는 뛴다.

“이보시게, 시방 뭘 하고 계신가?” “보시다시피 좌선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 좌선은 해서 뭣 하려는고?” “그야, 부처되려고요!”

다음날 남악선사(중국 8세기께)는 선방 앞에서 숫돌에다 기와를 갈기 시작한다.

“아니 스님, 시방 뭘 하고 계십니까?” “보시다시피 기와를 갈고 있네만” “기와는 갈아서 뭣에 쓰시려고요?” “그야, 거울을 만들려는 게지!”

“원 세상에,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들다니요!”



남악이 쏘아붙인다. “그래? 기와를 갈아 거울이 될 수 없다면야 퍼질러 앉아 어찌 부처를 기약하는고!”

아뜩해진 마조, 뒤이은 남악의 훈사가 추상같다.

“수레가 가지 않으면 바퀴를 때려야겠는가, 소를 때려야겠는가. 참된 도리는 앉거나 눕는 일에 걸리지 않고, 이르러야할 자리는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려서 취하고 버리는 마음으로 하여 부처가 아득한 것임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마조어록)

아무런 조건이나 구속을 받지 않는 마음자리에서 완벽한 인식의 정화가 이루어질 때, 오염된 본성의 해방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스승 남악회양의 선맥(禪脈)을 그대로 이은 마조도일선사는 ‘마음이 곧 부처’임을 주창했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규범이나 맹목적 좌선과 같은 모든 의도적 노력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인식과정에서 인식은 무명과 탐.진.치에 의해 오염된다. 고착과 편견, 집착과 배척 등의 왜곡으로 갈등과 고통이 야기된다. 그러한 ‘주관적 망정’에서 해방될 때, 절대평온을 누리게 될 것인 즉, 곧바로 마음의 본성을 움켜쥐라는 뜻이다.

“도는 닦을 것이 없으니 작위와 지향에 물들지만 말라. 도를 알고자 하는가. 평상심(平常心)이 도”라고도 했다. 인식의 모든 장애를 제거한 정신의 투명성 확보와 ‘일상의 환기’를 천명한 것일 테다.

‘평상심시도’는 ‘일상’에 내재된 근원적 힘을 절대원리로 하여 정신적 자유를 구가토록 한 마조 선의 핵심이자, 급진적(radical) 선의 파격이다.

그래서 도를 묻는 제자에게 ‘땔감하고 물 긷는 것’이며, ‘차나 한잔 드시게!’라며, 도는 일상 속에 있음을 넌지시 알리고는 했다. 중생은 차 한 잔 들면서도 머릿속이 참으로 다사다망하다.

여실지견(如實知見) ‘있는 그대로 보고 아는 것’

세계는 ‘있는 그대로’ 있다. 그래서 모든 존재양태와 그것의 생명력, 역동성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발양된다. 고로 그 세계를 부당한 개입이 배제된 ‘있는 그대로’ ‘날것 그대로’ 인식하는 주관은, 그 대상과 일체가 되면서 사라진다. 물아일체, 해방이다.

보라! 이 장엄한 우주의 춤사위를, 궁극의 노래를!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사서삼경 ‘시경’에서)

musagusa@naver.com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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