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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필리핀 메니저

4년 전 지금 회사에 처음 인터뷰를 하러 온 날, 머리에 촌스럽게 행커치프 같은 것을 반 접어 쓰고 있는 필리핀 아줌마가 있었다. 인상이 참 세보이며 하나도 멋스럽지 못한 첫인상이 좀 아이러니했다. 이런 잘나가는 미국 의류회사에 키도 내 반 토막한 촌스러운 여자가 새 디자인 개발팀 디렉터라니….

그렇게 첫인상을 우습게 봐서 그런지 나는 회사에 입사하고도 매니저에게 일일이 상의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많이 고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름 이 필드에서 15년의 경험이 있었고 여태껏 한국 사람 회사에서 큰 감투 없이 시니어 디자이너라는 직책으로 일해 왔었지만, 속으로는 나도 간부급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득이 이 회사로 옮겼지만 이곳에 나보다 먼저 일을 시작한 것이기에 지금의 매니저급으로 승진한 것뿐이지 굳이 아래 직원들을 일일이 참견하는 것이 못마땅했기에 그분에게 일일이 보고하지 않은 까닭도 있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1년을 부딪치면서 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매니저가 그때 왜 날 자르지 않았을까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나를 많이 고쳐 보려고 무던히 애쓰던 그분.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나는 소심줄처럼 질기게 그 매니저에게 대항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내 실수와 내 단점을 집어내어 고치라고 명령했던 그분, 정말 지독히도 미워하고 또 주일날 교회 가면 기도하고 회개하기를 반복하는 한해였다.



그런 그 매니저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나는 순간 내 기도의 힘인가 싶었다. 매니저가 달라지기만을 기도한 것이었는데 그래서 기도 응답에 감사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어느덧 그 매니저의 소신대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손이 빠르다고 자부하며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를 외치며 일처리를 후다닥 해결하던 버릇이 어느덧 고쳐져 있었고 돌다리를 일일이 두들기며 건너가듯 모든 일을 그녀와 상의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의 컨펌을 받는 대로 이메일을 보내고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머 이래서 우리 사이에 평화가 왔구나! 내가 왜 이런 평화를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고 그의 룰대로 처음부터 잘 따랐다면 더 빨리 배우고 쉽게 갈 수 있었을 텐데….

우리 디자인팀은 3개월 동안 임신과 출산을 거듭하듯 100여 개의 새 모델을 만들고 최종 미팅에 보내서 50% 정도를 골라내어 프로덕션으로 이어가서 의류 시장에 출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매니저는 옷 한 벌 한 벌에도 정성을 다하고 다른 국가에서 만들어온 샘플들이 맘에 안 들면 가차 없이 ‘리젝!’ 을 외치며 다시 보내 달라고 꼼꼼히 지적해내는 업계에서는 마녀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완벽을 원하는 스타일이라 너무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뒤통수에 동전만 하게 원형 탈모가 왔고 그래서 부득이 촌스러운 손수건으로 뒤통수를 가리며 다니는 것이었다.

이 모든 그녀의 상황이 이해되자 퍼즐이 맞춰지듯 그녀가 정말 고마웠고 짠했다. 그분은 나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었고 나의 콤플렉스를 잡아주고 내 나쁜 습관을 고쳐주는 유일한 분이었다. 나는 이제 다르게 기도한다. 하나님, 이런 합당한 동역자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서 매니저의 탈모도 고쳐주시고 건강을 되찾게 그분이 담배도 스스로 끊게 해주세요.

나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누구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회사에서 더없이 친한 사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같이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그리고 또 바람이 있다면 다른 동료들도 우리 매니저가 멋진 분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직 내가 예전에 생각하던 대로 마녀라고 여기는 이들이 종종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깨달으리라. 나는 1년 만에 알아챘지만 더 오래 걸리는 사람들도 있을테니까.


이선경 / 수필가 '미주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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