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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이 가을, 시(詩)가 나를 부르네

소슬한 바람에 등짝이 서늘하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 하나가 시(詩)로 보이고, 호수에 비치는 불타는 석양빛도 시로 보인다. 하늘에 둥둥 뜬 구름도 시요, 비 온 뒤, 베란다 기둥에 고드름처럼 맺힌 물방울도 시다. 손자 블루의 앞니 빠진 구멍도 시다. 모두가 이렇게 시로 보이는 현상은 망상일까, 착각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답은 가을이다. 가을이 되니 옷자락 속에 스며드는 까칠한 바람이 마음을 긁고, 가슴을 휘집어 시 속에 나를 포박한다.

시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마음 속에 떠오르는 느낌을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이라고 되어 있다. 뭔가 마뜩치 않아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59세의 나이에 첫 시집을 상재한 강원도 한 시인의 이야기에 마음을 뺏겼다. 그녀는 시란 특별한 게 아니고 "그냥 살아가는 얘기. 외롭고 힘든 존재들에게 괜찮다, 다 괜찮다 응원하는 게 시"라며, 그래서 자신은 "기죽지 말라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시를 쓰고 싶다"고 소박하게 말했다.

'봄날의 풍경'을 그녀는 '쥐강냉이 튀밥으로 팡팡/ 박꽃 터지고/ 가래떡 뻥튀기로 펑펑/ 목련꽃 벙근다/ 아기 웃음 소리도/ 할머니 주름도/ 눈부시게 터진다/ …지구는 단내 나는 콧김 내뿜으며/ 연신 뻥이요 뻥이요…' 라고 그린다. '다초점 안경'이란 시에선 '보이는 것만 보았던 나를 버리니/ 오물 냄새 퀴퀴한 전봇대 밑에/ 분꽃이랑 봉숭아 꽃씨 한 알 꾹꾹 묻어주던/ 그 투박한 손이 꽃잎으로 보인다/ 하늘을 수틀 삼아 뻗어가는 넝쿨장미 밑에서/ 시멘트 틈새로 꼬물꼬물 발가락 밀어 넣는/ 꼬꼬마 채송화의 꿈도 쑥쑥 읽힌다…'며 우리들의 내재해있는 동심에 과녁을 맞추기도 하고, 나이 먹어 비로소 꽃의 아름다움을 새삼 감사하는 우리네 속내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나는 이런 시가 좋다. 기교도 없고, 쉬운 시. 한 번만 읽어도 팍! 감동이 오고, 공감되는 시.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어려운 시는 마음이 더 복잡해지지만, 이런 시를 읽게 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힐링이 된다. 모르는 사이 용기와 희망도 생긴다. 이런 시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시인의 꿈도 야심만만 꿀 수 있다. 이런 시가 맛있는 시 아닐까.



자연주의 시인인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1868~1938)의 시 역시 그러하다. 프랑시스 잠은 백석과 윤동주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시인이다. 그런 그 자신은 보들레르의 시에 매료되어 시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인 폴 끌로델은 그를 가톨릭에 입문시켰다. 그의 시에 종교시가 많은 연유이다. 평생 시골에서 살면서 자연을 노래하고, 기도를 시로 승화시킨 그의 삶은 진정 닮고 싶은 존경스럽고 멋진 삶이기도 하다.

'식당'이란 시를 프랑시스 잠은 '식당에는 빛 바랜 장롱이 하나 있다/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할아버지 목소리도/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어 온 장롱/ 이 같은 추억을 장롱은 충직스레 간직하고 있다/ 그 농이 아무 말도 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건 잘못이다/ 나는 그 장롱과 이야기를 하니까'로 시작한다.

세상에나. 식당에 있는 찬장에서 돌아가신 조부모나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장롱과 얘기도 하다니. 그런 그의 시심은 바로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이웃의 이야기 같지 아니한가. 사람의 느낌이란 시공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해서, 남녀불문코 공감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프랑스와 한국의 시인이 배틀하듯 말하고 있는 세상이 어쩜 그리 같은 시선일까 싶다.

이맘때 쯤이면 뉴욕 산들의 단풍이 절정을 이룰 시기건만, 올해는 단풍이 유난히 늦다. 단풍 대신 이 가을, 나를 부르는 시에 무조건 빠져 본다. 가을이 가을이라서 참 좋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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