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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H 이야기

"넌 측은지심 느껴본 적 있니?" "측은지심?" 물론 그 뜻은 알고 있었지만 왜 그 친구가 나한테 그 질문을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친구가 보기에 나는 얼마나 한심했을까. 대학 졸업 후 42년만인 작년에 한국과 방글라데시에서 사업하던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나와 며칠을 보낸 후 떠나면서 물었던 질문이다.

지난 달 한국 방문 때 나는 아예 그녀 집에 거의 3주를 기거했다. 이번 한국 방문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다. 홀로 떠났기에 친인척의 가족관계나 인사 치례에 매이지 않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왔다. 현재 내 주위에 가까이 살고 있는 지인들만 보아도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고 고유한 색채를 띠며 살고 있다.

그런데 3주 동안 그녀와 함께 먹고 자고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작고 부끄러워 소실점 속으로 숨고 싶었다. 난 지독한 개인주의자인 반면 그녀는 행동하는 양심, 박애주의자, 실천하는 인본주의자이다. 난 열심히 일해서 나 잘 먹고 잘 입고 잘 차려 놓고 살아왔다. 냉장고도 옷장도 차고 넘친다. 내가 버리는 쓰레기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한 기업의 총수인 그녀의 생활은 근면 검소하다 못해 초라했지만 그녀에게서는 광채가 났고 향기가 진동했다. 그녀는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를 거부한다. 재산을 모아 사회에 기부하고 환원한다. 그렇게 다 나누어주고 어떻게 비즈니스를 운영하는가 물으니 "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고용인의 마음을 운영한다"고 한다.

10년 전에 그녀는 남편을 잃고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친정아버지께서 방글라데시에서 해오던 의류사업이 파산의 위기를 맞았다. 할 수 없이 영어에 불편이 없던 그녀가 파산신청을 하러 현지에 갔다. 그녀는 고용인들을 다 모아 놓고 그녀가 온 이유를 밝혔다. 장내는 숙연했다. 모두들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의 눈빛은 간절했다. 절실했다. 그리고 갈망했다. 섬광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여러분들은 이 회사가 문 닫기를 원치 않습니까? 그럼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또 모았다. 그렇게 해서 10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녀는 역사학을 전공했고 그녀 남편 역시 역사학 교수를 지냈다. 그녀는 사업에는 문외한이었지만 고용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지금도 그녀는 방글라데시에 가면 여왕대접을 받으며 현장을 돌면서 귀와 가슴을 열어 놓는다. 작년에 우리 집에 왔다 돌아갈 때 그녀는 고용인들을 위해 여러 비타민과 관절염 약을 너무 많이 사가지고 가서 내가 놀랐던 기억도 있다.

그녀의 집은 항상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다. 이층은 아예 '역사학 연구소'로 기증을 해서 대학원생들의 천국이다. 그녀는 이 세상에 태어난 누구와도 친구이고 나를 부끄럽게도 만들지만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친구, H이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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