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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앞으로, 앞으로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은 뭘 입어도 예쁠 때야!"/ 그 애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아마도)//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황인숙시인의 '송년회'전문

"또 하루가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의 첫 부분이다. 이 노래가 발표 되던 무렵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라는 시집이 발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돌풍과도 같이 지나간 이십대를 벗어나 다다른 삼십대, 관계 속의 피로감으로 적당히 무력감에 젖어 가고 적당히 늙은 것만 같았다. 모든 기민한 것들을 비켜가며 삶은 피동적으로 내몰렸다.

그러다 맞이한 사십, 적당히 이악스러워지고 적당히 용감해졌다. 무언가 다른 삶을 추구하며 다른 모색을 하고는 싶었지만 환경과 형편에 주눅이 들었다. 지금 내가 사십대 라면 달라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 때는 사십이란 막후의 접촉 같은 것, 전(前)도 아니고 후(後)도 아닌 어정쩡한 매력 잃은 고무줄바지인줄만 알았다. "마흔 살을 불혹이라 했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강윤휴 '불혹 혹은 부록')



쉰살, 시간도 무른 호박처럼 흐물흐물 하는 것만 같았다. 하늘의 뜻을 안다(지천명)는 멋있는 말이 위로가 되긴 했지만 무엇에도 취하지 못하고 적당히 변명을 하며 삶의 농도를 가늠하곤 했다. 아픈 몸은 늘 핑계가 되었다. 삶을 선도하는 게 아니라 끌려가며 지지부진하게 세월이 갔다. "애들이 커서 다 떠난 텅 빈집엔/ 살아온 생이 지겹지 않아서 문득 지겨운/ 그런 적막이/ 길바닥처럼 쌓여 무장무장 썩고 있다.(곽진구 '우울, 그 오십 이후')

육십은 잠행하듯 왔다. 저항도 투정도 못하고 순순히 모셔 들였다. 의자에 앉히고 차를 내놓고 어깨를 토닥이며 왕림을 감사로 받았다. 갈기가 쳐진 사자처럼 무심해진 눈으로 온 길을 돌아보고 갈 길을 바라보며 축하를 받고 여행도 가고 용돈을 받아 챙기면서 말이다. 살아온 날들이 대단한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으스대는 것으로 허한 속내를 감추면서 말이다. "아주 낯선/ 처음 찾아온 손님같이/ 육순이 문지방을 넘어섭니다// 어쩐다/ 허나 얼른 마음 고쳐먹고/ 중얼거리듯 말합니다// 어서 오시게나 오실 줄 알았네.(문종수 '육순 문턱에서')

나의 오십대는 사십대를 꾸짖고 사십대는 삼십대를 꾸짖는다. 꾸짖을수록 회한이 밀려온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야말로 너무나 화려해 눈이 부신 날들이라는 것을. 환갑이라는 나이가 뭘 입어도 예쁠 나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이가 무슨 푯대라도 되는 양 나이에 맞춰가려는, 그게 나이를 잘 먹는 거라는 말들을 선호하면서 말이다.

유엔은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 등을 고려해 생애주기를 5단계로 나눠 새로운 연령 기준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 노년,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환갑은 아직 청년이라는 말이니 뭘 입어도 예쁜 건 당연한 일이겠다. 부풀대로 부픈 가슴으로 뭐든 수용하고 감내하며 좌충우돌해도 되는 나이라는 말이겠다.

올해는 내가 사는 가장 젊은 해, 올해보다 더 젊은 날은 없을 터다. 그러니 염려하고 겁낼 게 뭔가. 앞으로, 앞으로 당차게 내 딛어야 한다. 엄살은 금물이다. 지나친 염려도 사양이다. 아직 꼿꼿한 다리를 믿어봐야겠다. 앞으로! 변함없는 새해의 슬로건이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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