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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포럼] 돌아보며 감사하고 앞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퀸즈 YWCA가 매달 진행하고 있는 '무료 농산물 나눔 행사'. 지역 주민들에게 채소와 과일을 제공한다.

퀸즈 YWCA가 매달 진행하고 있는 '무료 농산물 나눔 행사'. 지역 주민들에게 채소와 과일을 제공한다.

지난해 열린 퀸즈 YWCA 직원.이사 연말파티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퀸즈 YWCA 직원.이사 연말파티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새해가 밝았다. 매일 매일이 어제와는 같을 수 없는 새 날인 것은 사실인데 우리는 특별히 새해에는 새로움을 느끼며 새 마음을 갖는다. 새해 첫날은 특히 한 해의 처음 시작되는 날이라고 해서 부모님과 어른들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린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그분들께 감사하며 덕담을 주고 받으며 새해을 시작하려는 우리의 참 좋은 풍습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특별한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날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인지 매년 생일과 기념일 등을 축하하며 기념한다. 그리고 그 기념일이 시간이 갈수록 또 100일 기념, 1주년 기념 등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기억한다. 퀸즈 YWCA는 지난해에 40년을 맞았다. 올해는 3월에 41주년 기념으로 'Theme'을 'Making a Difference Together'로 정하고 새로 시작되는 41년의 첫발을 내딛으려 한다.

40년 전 작은 지하실서 시작
첫 방과후학교·노인대학 등


40년을 지나고 새로운 발돋음을 하려하니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YWCA의 초대 총무이자 창립 멤버인 홍인숙 고문 총무의 '감사의 40년을 돌아보면서'라는 글의 일부분을 함께 나누고 싶다. '40년 전 1978년 5월, 9명의 한국에서 이민 온 여성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모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면서 서울에서 YWCA에서 활동한 경험을 가지고 YWCA를 창립하여 기관명을 한인YWCA라고 결정하였다. 플러싱의 한국 의료원 지하실 작은 사무실을 정하고 자녀 교육 때문에 이민 온 한국의 젊은 부모들을 돕기 위한 방과후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린이들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이민가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는 프로그램을 하게 되고 한인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을 첫번째로 시작하게 되었다.

어린이 방과후학교(1978), 주부클럽활동(1978), 노인대학(현 늘푸른대학, 1978), 어린이.청소년 여름학교(1979), 청소년클럽활동(Y-Teen).청소년상담.GED반 (1980), 모금바자회(1980), 수공예반(1980), 어린이합창단(1981), 연례만찬(1981), YWCA 퀸즈 한국학교 (1982), 어머니합창단(1985), 청소년센터.방과후학교.청소년 토요 체육반 (1986), 청소년합창단 (1991), 늘푸른합창단(1991), 청소년 국제캠프 (1997), 'New York Music Competition'(1998, 뉴욕중앙일보 공동주최) 이외에 영어강좌, 사회제도, 교육 등과 같은 강좌와 유권자등록, 교육위원 선거참여 등을 하며 주류사회로 연결하는 다리역할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 Y 합창단은 우리 조국을 알리는 민간외교의 목적으로 창단되어 미국기관, 큰행사를 하는 봉사기관의 초청을 받아 연주를 하였다. 조국의 통일을 생각하면서 1997년에는 UNICEF와 공동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 음악회' (정명훈, 정명화, 한동일, 김영옥, 신영옥 재능기부)를 하였다

1993년 회관 준공 완료하며
지역봉사기관으로 범위 넓혀


1993년 회원들이 기도하고 원했던 회관이 준공되면서 한인사회 중심이었던 활동영역을 지역사회 전체를 위한 지역봉사기관으로서 범위를 넓히게 되어 작은 'UN City'라고도 불렀다. 앞으로 창립 50년, 100년이 지난 뒤에 우리의 역사를 모르는 회원들이 오면 'YWCA of Queens'는 미국에서 유일한 저 멀리 한국에서 이민 온 한국 어머니들이 우리 모두의 후손들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면서 회관도 마련하게 되었다는 옛날 얘기를 들려주기를 기대해 본다.

그 초기의 멤버 중에 고 서희전 명예이사가 있다. 홍인숙 고문총무는 그녀가 없었다면 YWCA를 꾸려 나가기 힘들었을 거라고 말할 만큼 그의 공로가 컸다.

35세의 젊은 나이로 퀸즈 YWCA에서 봉사하기 시작, 그의 나이 60이 되던 2003년에 25년 근속 이사 감사패를 받았다. 1970년 뉴욕으로 이민 오기 전인 한국에서부터 YWCA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친구였던 홍인숙 고문총무와 Y의 창립멤버로 말없이 지원을 한 숨은 일꾼이었다. 창립초부터 직장에서 퇴근하면 바로 YWCA로 가서 늦은시간까지 일을 했고 전문직 여성으로 전공을 살려 회원명단을 컴퓨터에 입력, 편리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재정부터 시간과 봉사를 모두 YWCA에 쏟아부었다. 그를 옆에서 본 사람들은 그녀의 삶은 곧 Y 그 자체였다고 회고한다. 그녀는 은퇴와 더불어 한국으로 2014년에 돌아간 후에 그곳에서 연변 조선족 여성조직인 민들레 문화 교류 협회를 매년 방문하며 조직 구성, 이사회 운영, 사무실 정비, 회계 관리 등 운영 전반을 도왔다. 또한 한국 YWCA 연합회의 위원으로 봉사하면서 평화 통일의 염원으로 2016년에는 북한의 자립 마을 건립도 지원하고 통일을 위한 순례 여정인 한민족 여성들의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행진에 참여하여 지난 2년에 걸쳐 퀸즈 YWCA를 대표하여 활동소개를 하였다. 그랬던 그가 지난 11월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장례 예식은 한국에서 있었지만 퀸즈 YWCA에서도 그녀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가장 사랑했던 퀸즈 YWCA에서 추모 예배를 드렸다.

최근 고 서희전 명예이사 추모
지금도 창립·초기 멤버들 참여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많은 사람들은 정말 오랜만에 만났고 서로 옛 추억을 나누었다. 함께 했던 초대 멤버들, 역대 이사들, 그 외 그를 알았던 여러 지인들과 교회 교우들이 모였다. 필자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퀸즈 YWCA의 직원들은 그를 몰랐다. 그러나 이 자리로 인해 퀸즈 YWCA의 역사를 많은 사람의 입으로 전해 듣게 되었고 알고 또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감동적인 헌신과 사랑의 이야기는 마음 깊이 새겨졌고 아마도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세대에게 전해 질 것이다. 아름다운 마음을 품었고 또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며 일생을 산 고 서희전 명예 이사의 삶은 지금 퀸즈 YWCA에 오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며 정말 헛되지 않은 삶이었다고 축하드리고 싶다.

아직도 창립 멤버와 전 회장단, YWCA멤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는 퀸즈 YWCA는 빛과 소금으로 겸손히 섬기는 그분들로 인해 41주년을 감사함으로 맞게 될 것이다.


김은경 / 퀸즈YW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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