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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여동생 자살 통한 한 여성의 진실 드러내기

김종오 기자의 [미로에서 책읽기]

블라인드 아사신(The Blind Assassin,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실 북스(Seal Books), 6백55쪽)

여동생 자살 통한 한 여성의 진실 드러내기
격변의 30,40년대 자매 이야기 담담히 전개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인가? 우리가 진실된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대상은 온전하게 진실을 보여주는 것인가? 진실은 감춰지는 것인가? 애초에 온전한 진실을 안다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당대 최고의 캐나다 작가 중의 하나라고 인정되고 있는 마가렛 애트우드의 장편소설 ‘블라인드 아사신(The blind Assassin)’은 바로 진실 드러내기의 인생 여로(旅路)를 82세 된 작중 화자의 육성을 통해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동생 로라는 종전(終戰)된 지 10일 후 차를 다리 아래로 몰아 떨어졌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이후 동생의 자살과 관련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언니 아이리스(작중 화자)의 회고로 이어진다.


아이리스 체이스와 로라 체이스는 토론토 인근 포트 티콘더로가라는 도시에서 단추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의 딸로 태어난다.
그러나 30년대 경제 대공항 시기 공산주의자들이 아버지의 공장에 방화를 저지르고 아이리스와 로라는 방화범으로 의심되는 알렉스 토마스를 자기 집에 숨긴다.


공장 화재 이후 아버지의 사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며 아버지는 사업체와 어린 딸들(아이리스 18세, 로라 14세)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리스를 사업가인 리처드 E. 그리핀에게 시집 보낸다.
그러나 리처드는 탐욕스러운 사업가이면서 정치적인 야심이 강한 자로 아이리스와 로라의 고난이 본격화 된다.

세상물정 모르고 나이브한 아이리스는 리처드에게는 밤에만 유용한 존재이며 자의식 강한 로라는 법적인 후견인인 리처드에게서 떠나기 위해 몸부림 친다.


이 작품이 처음에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아이리스에 의해 1인칭 화자로 전개되는 소설 속에 회고의 내용이 포함되며, 처음부터 로라 사후에 출간된 것으로 암시되는 또 하나의 소설인 ‘블라인드 아사신’이 동등한 자격을 갖고 전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리스의 회고에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토론토 스타’와 ‘글로브 앤드 메일’ 의 기사가 회고 전후에 배치돼 있는 중층의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아사신’은 하나의 온전한 소설로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 공산주의자인 남자(he)와 가정이 있는 여자(she)가 더럽고 누추한 호텔 등을 전전하며 사랑을 나누고, 남자가 여자에게 팬터지 소설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남자가 여자가 들려주는 소설은 가상 행성인 플래니트 자이크론(Planet Zycron)의 지하도시 사키엘-논(Sakiel-Norn)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카펫이 귀한 물품이며 손이 섬세한 어린이들이 카펫을 제조하게 된다.
어린이들은 중노동으로 결국 눈이 멀게 되고 눈이 먼 어린이들은 사창가로 팔리게 된다.
다행히 이곳을 탈출한 눈먼 어린이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예민한 감각을 이용해 암살자(blind assassin)로 활동하게 된다.


‘블라인드 아사신’은 로라의 이름을 출간되고 일부 사람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회고를 계속하며 ‘블라인드 아사신’의 실제 저자는 로라가 아닌 자신임을 밝히고 리처드의 성적(性的) 탐욕도 드러낸다.


아이리스는 로라가 사랑했던 알렉스 토마스를 자신도 사랑했고 자신의 딸 에이미의 친 아버지도 리처드가 아닌 알렉스였음을 고백한다.
모든 진실을 밝힌 아이리스는 결말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손녀 사브리나가 자신의 회고를 읽어 주기를 바라며 숨을 거둔다.


아이리스가 기억하고 있는 진실은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소설에서 로라의 진실을 듣지 못했으며 알렉스가 로라를 사랑했는지, 아이리스를 사랑했는지에 대한 알렉스의 고백도 듣지 못했다.
로라가 차를 몰고 계곡으로 떨어진 것이 리처드의 악행 때문이었지, 혹은 아이리스가 알렉스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체이스 가(家)의 하녀였던 리니의 딸이며 아이리스를 죽기 전까지 돌보았던 마이라의 친아버지가 바로 아이리스의 아버지였는지, 아닌지 모른다.
리처드가 에이미를 자기의 친 딸로 알고 있었으면서도 딸에 대해 무모한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친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그것도 모른다.


아이리스가 밝힌 진실은 아이리스만 소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메타픽션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은 어쩌면 원래 소설이라는 것이 진실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애트우드의 통찰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리얼리티가 허구이고 비이성적이라는 거친 가정을 한다면 진실의 추구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애트우드가 사실성을 가장하기 위해 이 작품에서 삽입하고 있는 신문 클립들이 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흥미로운 것 하나. 이 소설에 묘사하고 있듯이 30년대 캐나다 사회 일부에서 그처럼 공산주의의 사상이 퍼져 있는가라는 점이다.
더 많은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 ‘여성들이 옷을 입고 머리를 돌려 거울을 바라보는 것이 허영 때문인가? 혹은 뒷모습에서 잘못된 점이 없는 가를 찾기 위한 것인가?

애트우드를 읽지 않고 캐나다 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애트우드는 커다란 중압감으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애트우드의 작품 대부분의 두께가 만만치 않아 읽기가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블라인드 아사신’도 6백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었다.


흔히 출판사는 소설 앞에 걸작이라는 의미의 마스터피스(masterpiece), 투어 드 포스(Tour de force) 등의 찬사와 손에 떼게 어렵다는 ‘언풋다운어블(unputdownable)’이라는 단어로 독자를 유혹한다.
‘블라인드 아사신’의 책 앞에 이러한 찬사가 없다고 해서 그러한 찬사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김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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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애트우드는

지난 1939년 11월 오타와에서 태어났다.
어바지는 동물학자였으며 어머니는 식품 전문가였다.


1961년 토론토 대학 영문학과 졸업했다.
애트우드의 스승 중에는 제이 맥퍼슨과 노드롭 프라이가 포함돼 있다.
하버드 래드클리프 컬리지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고희를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애트우드의 창작 이력은 소설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시, 에세이, 동화 등 다양하게 퍼져 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며 종종 작품에도 성의 문제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주제는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캐나다의 국가적 이이덴티티, 미국. 유럽과 캐나다의 관계, 인권, 환경 , 캐나다 자연, 여성성의 사회적 의미 등 다채롭게 뻗어 나간다.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캐나다 작가 중 하나이다.
대표작 ‘하녀의 이야기(The Handmaid’s Tale)’이 번역돼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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