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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모든 경제활동이 제한된 코로나 사태 속에 치과 예약을 하였더니 예약시간 5분 전 도착하여 주차장에서 전화로 접수처에 보고한 후 대기하고 있다가 호출하면 마스크 착용은 잊지 말고 사무실 문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예약 환자가 약속 시각을 행여 잊어버릴까 진료 하루 전에 미리 안내 전화하여 주던 여직원의 옛날의 친절은 사라지고 이제는 접촉하면 나병(癩病)을 옮겨주는 한센병 환자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다. 코로나 감염은 무증상 확진자가 많다고 하니 엄격한 매뉴얼을 지키는 것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인도 여행에서 들은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Untouchable)이 된 기분이다. 인도의 4계급 브라만(사제자), 크샤트리아(귀족), 바이샤(서민), 수드라(노예) 등 4계급이 있다는 것은 서양사 시간에 들었지만 그 아래에 달리트라는 천민 계급이 또 있다는 것은 인도에서 처음 들었다. 바로 이들이불가촉천민이다.

이 달리트 계급은 인도의 전역에 거주하며 총인구의 약 15%에 달하고 이들은 사원 출입과 공동화장실 사용이 금지되는 등 제약이 많다고 한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인도에서 공식 폐기됐지만, 최하위 계층인 달리트는 여전히 천대와 차별의 대상이라고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고 근대에는 이 천민계급에서 인도 대통령이 두 사람이나 나왔다니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필자가 유년 시절 성장한 시골 소읍의 산간 마을에서도 도살업을 하는 백정이라는 직업의 상민들은 마을에서 외딴곳에서 그들만 모여서 사는 동네가 따로 있었고 백정의 아낙은 나무 함지박에 소고기를 이고 집집마다 행상 다니던 걸 본적이 있다. 지금처럼 플라스틱 용기가 없었던 시절에는 그들의 업 중 하나는 싸리나무를 가다듬어 채반지나싸릿도시락 등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는 제한적 경제활동 밖에 었었다.



행상의 아낙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고객인 우리 아버지가 그녀를 대하는 말씨는 언제나 하대(下待)였다. 반면 고객인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호칭은 ‘선비님’이었다. 해방되고 세월이 흘러 몇 년 지나니 한 길가에 푸줏간이 들어섰지만, 아버지의 말투는 여전히 “어이 여보게 등심으로 한 근(斤) 주게” 였다. 단칼에 눈짐작으로 잘라낸 한 덩어리의 소고기는 막대 저울로 재면 정확히 한 근(斤)이었다. 포장지가 없던 때였으니 한 근 고깃덩이에 칼집을 낸 구멍에 볏짚 줄기를 넣어 손잡이를 만들어 주었다. 그 푸줏간에서 신문지 포장으로 쇠고기를 싸 준 것은 또 몇 해가 지나서였다. 그때 그분의 지론은 백정은 상놈이니 반말로 하여야 한다는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사회적 관습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 타성이 아직도 남아있다.

인도는 총리가 내각을 이끄는 의원 내각제 정치 체제이기에 대통령은 상징적이고 의전적 역할만을 수행한다. 최하위 ‘쌍놈’ 출신이 두 명이나 대통령으로 선출된 민주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국의 불가촉천민인 백정이란 단어도 갈비탕 음식점 상호로 버젓이 신분 상승하여 대접받는 사회로 발전하였고 정육점 사장님에게 백정이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원격 진료가 보편화 될 전망이라고 하니 ‘불가촉 진료’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윤봉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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