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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톡]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세계인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스위스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들이 문득 이 죽음에 대해 묻는다. 이 허무하고 부조리한 죽음에 대해 열 한 살 아이가 던지는 ‘왜’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할까. 인류의 문명과 사상의 진보 속에서도 청산할 수 없는 과오가 있다면 바로 이런 차별일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초상화 하나를 보여주었다.

스페인의 궁정 화가로 명성을 떨치던 벨라스케스가 1650년 자신의 노예이자 조력자였던 후안 데 파레하의 초상을 그린 그림이었다.

짙은 피부의 얼굴을 한 노예 후안은 고급스러운 갈색 외투를 입고 있고 오른손을 배와 가슴의 사이에 얹은 채 시선은 조용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어두운 옷 색깔과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새하얀 색깔의 고급 레이스 깃이 그의 어깨를 덮고 있다. 그의 이마와 콧등을 비추는 빛에 의해 후안의 검은 눈동자의 표현을 또렷이 느낄 수 있다. 그의 눈동자는 순수하고 진지하고 우아하며 우수에 차 있는 한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벨라스케스가 어떻게 이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주로 왕족이나 귀족·교황 등 백인 기득권층의 초상화를 그렸던 그가 그린 후안의 초상화에서 인간의 숭고함과 고귀함을 느낄 수 있다.

빼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던 후안이 지녔을 화가로서의 자부심과 예술가로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맺힌 한이 뒤섞인 저 시선을 그려나가던 벨라스케스의 마음이 한없이 겸허해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그래서였을까? 이 그림이 그려진 이듬해 후안은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고 화가로서 여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 살 때 아이의 야외 수업에 동반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우루루 지하철에 올라탔는데 한 백인 엄마가 자신의 아들 옆에 있는 빈 자리 옆에 흑인이 앉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를 그 자리에 앉지 못하게 했다. 예기치 못한 이 폭력적 상황에서 분노와 체념이 교차했던 그 흑인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무심코 엄마의 말을 들었던 아이의 마음에 새겨질 인간에 대한 차별로 인해 수많은 조지 플로이드가 생겨날 수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비춰줘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무심코 길들여진 차별의 잣대를 들이대며 우월감에 빠져들려 할 때 후안 데 파레하를, 진지하고 명석한 한 화가의 숭고한 시선을 떠올리길 기대해 본다.


최선희 /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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