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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해저 ‘2만리’는 얼마큼 길이일까

‘리그(League·프랑스어 Lieue)’는 오래 전 유럽에서 거리를 재는 단위였다. 1리그는 4km로 사람이 한 시간에 걷는 거리라고 한다. ‘리(里)’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사용하는 거리를 재는 단위였다.

1리는 360보 라고 하니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의 10리는 3600보, 약 4km이다. 매일 만보 걷기 운동이 있기도 하니 10리는 생각보다 짧은 거리다. 그런데 한국이나 중국에서 10리는 4km이지만 일본에서는 1리가 4km라고 한다. 일본의 10리는 곧 40km이다. 한국의 10배다.

어린 시절 우리를 매혹시켰던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SF 소설 ‘Twenty Thousand Leagues Under the Sea’의 우리말 번역은 ‘해저 2만리’이다. ‘20,000leagues’를 ‘2만 리’로 번역한 것이다.

1리그는 4km(4000m)이고 1리는 0.4 km(400m)이니 20,000리그는 200,000리가 돼야 맞다. 곧 ‘해저 2만리’는 ‘해저 20만리’라고 해야 맞는 번역인 것이다. ‘20,000리’라고 하면 20,000 x 0.4로 겨우 8000 km 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식 ‘리’가 80,000km인 것이다. 지구 둘레가 40,075 km 이니 그 책에서 잠수함을 타고 거의 지구 두 바퀴를 다닌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면 노틸러스호를 따라 태평양과 대서양을 항해한 루트가 다 나와있다. 대충 멀리 다녔다해서 20,000리라고 붙인 게 아닌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우리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어 일본인이 번역한 서양의 신학문 용어를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본 번역서를 다시 우리 말로 번역하다 보니 이렇게 거리가 터무니 없이 10배나 짧아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실수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열심히 계산을 해보고 자료를 찾다 보니 이미 그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그런데 역자 후기나 해설로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혀두는 정도라고 한다. 이런 큰 실수를 알고도 바로 잡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쓰는 언어에는 혼이 깃들어 있고 언어란 민족 정체성의 본질이다. 너무나 많은 외래어, 외국어의 사용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도 오염되고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 말에 남아있는 일본어의 잔재를 다 없애고 우리 말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북한에서는 이미 ‘우리말 순화운동’을 해 그 작업이 많이 진행돼 있다고 부산대학교 언어학자 이병운 교수가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그 책이 이미 ‘해저 20만리’라고 번역되지 않았겠나 싶은 의문이 든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새로 발간하는 책에는 올바르게 제목이 번역 되었으면 싶다. 어린이들은 아주 작은 것도 의문을 품고 물어 본다.


김지현 / 수학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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