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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In] 고수를 기다리는 이유 II

고수는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찾는 게 일이었다. 인물의 무게도 중요했지만 시의성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연령, 성별, 직업군도 고려해야 했다. 그런 고수의 기준에 맞춰 셀폰에 저장된 1500여 개 연락처 주인들을 검증했다. 딱히 들어맞지 않는다면 연락처의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부탁했다. 그렇게 만난 이들은 깊숙이 숨어있는 ‘은자’들이 아니었다. 틀에 맞춰 묻지 않고 듣지 않고 보지 않았을 뿐 만나기 어렵지 않은 이들이었다.

두 달 전부터 매주 1회 게재해 온 ‘고수를 찾아서’ 인터뷰 시리즈가 10편째를 앞두고 있다. 연재다 보니 회를 거듭할수록 반응은 냉정하다. 물론 칭찬이든 지적이든 기자 입장에서는 읽어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다. 그런데 글의 의도에 인터뷰 대상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목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으니 글쓴이의 책임이다. ‘진기명기’나 ‘세상에 이런 일이’, ‘무림 고수’, ‘생활의 달인’ 같은 코너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 기사에서 그 기대를 접어달라 에둘러 표현했다. ‘깨달음 없이 부나 학식, 기술만을 습득한 자는 하수에 가깝다. 고수는 고집스럽게 '장이'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하는지 제대로 알고 실천해온 사람들이다.



기사에서 앞세우고자 했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고수’에 대한 정의다. 인물들이 겪어온 인생 굴곡은 그 정의를 부각시키기 위한 무대장치였다. 그래서 글의 마지막엔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고수가 뭔가’. 답변들은 이렇다.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라기보다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리더”-LA경찰국 24년차 베테랑 수사관 조지 이.

“미숙해서 두렵지만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잘하는 사람”-미국 바둑협위 랭킹 1위 이상협 7단.

“자기 꾀에 빠지지않는 사람”-21년차 커플매니저 제니퍼 이.

“자기 위치를 아는 사람, 상대의 역할을 이해하는 사람”-할리우드 20년차 조명감독 김기표.

“끈기있게 맞는 열쇠(해답)를 찾는 사람"-60년 열쇠 명인 김대석 사장.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경청하는 의사"-질병예방통제센터 역학의학자 메리 최.

“남이 안 볼 때 더 잘하는 사람”-20년 방역전문가 조현규 사장.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 하는 이”-27년 방송인 정재윤 사장.

“현실에 대해 아프더라도 정직하게 조언하는 이”-37년 법조인 김기준 변호사.

답변들은 평범하다. 그런데 평범하기가 가장 어렵다. 이 대답대로만 산다면 집단의 위기는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될 때, 자기 위치를 모를 때, 남이 안 본다고 일을 게을리할 때, 해답이 없다고 포기할 때, 현실이 아프다고 외면할 때 재앙이 터진다. 그래서 고수의 반대말은 하수가 아니라 무능력자다.

아무나 고수라고 할 수 없지만 누구나 고수가 될 수 있다. 묵묵히 내 일을 했을 뿐인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이미 고수가 되어 있을 수 있다. 자식 바르게 키운 부모도 고수다. 고령의 부모를 자주 찾아뵙고 안부 묻는 것도 고수다. 일터에서 ‘똑 부러진다’는 평판을 듣는다면 고수다. 식탁에 올릴 찌개 하나라도 맛있게 끓인다면 고수다. 문 앞에서 상대에게 먼저 문을 열어주는 배려가 몸에 밴 사람도 고수다. 화가 치밀어도 고객에게 상냥한 웃음을 잃지 않는 이도 고수다.

따지고 보면 그런 평범한 고수들을 우린 좋아하고 칭찬한다. 유례없는 전염병에 일상이 실종된 지금, 그런 평범한 고수들이 진정한 고수일지 모른다. 고수는 어디에나 있다.


정구현 선임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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