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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생활 시작부터 45년째 구독"

미주 중앙일보 창간독자 한기응씨
총상 입은 한국전쟁 상이 용사

19일 중앙일보 광장 명명식에 창간독자 자격으로 참석한 한기응(왼쪽)씨가 또다른 30년 독자 김경자씨와 표지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19일 중앙일보 광장 명명식에 창간독자 자격으로 참석한 한기응(왼쪽)씨가 또다른 30년 독자 김경자씨와 표지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미국에 이민 오자마자 처음으로 신청한 신문이 중앙일보입니다. 처음부터 다양한 정보에 흠뻑 빠져들었는데 벌써 반세기 가까이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19일 '윌셔와 노먼디' 코너에서 열린 중앙일보 광장(Korea Daily JoongAng Ilbo Square) 명명식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VIP 독자로 자리를 지킨 한기응(92)씨는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최영복(85)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둔 한씨는 1974년 LA로 이민 온 창간독자로 45년 동안 가주에서 중앙일보 구독을 이어오고 있는 열성팬이다.

지금은 한인타운 7가에 살고 있지만 LA중앙일보가 탄생하기 직전에는 다저 스타디움 인근 모튼 아파트에 거주했다.

"당시 미국에 왔으면 당연히 생활에 필수적인 일간신문부터 보는 것이 대세였지요. 비록 5년 먼저 문을 연 한글신문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서울에서부터 애독하던 중앙일보를 신청했습니다."



원래 친숙한 매체라는 이유 외에 이민 생활의 정보를 가득 담은 사회면 기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이밖에 정론을 표방한 해설과 편집이 산뜻한 점도 좋았다고.

"다른 신문들은 손에 잉크가 묻을 정도로 인쇄가 지저분했는데 매일 제작되는 제품에 불성실한, 싸구려 이미지가 겹쳤습니다."

미주 중앙일보의 산 증인인 한씨는 강원도 횡성이 고향으로 춘천 사범학교 교원 양성소 출신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에 진출했고 교육청 학무과로 옮겨 근무하던 중 미국 이주를 결심했다. 목사인 처남이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하루라도 빨리 미국에 오는 것이 좋다"라고 강력히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이용사다. 69년전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 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한 미 육군 7사단 소속 카투사였다. 강원도 평창 전투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국군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또 "당시만 해도 미군 담당 병원에 비해 의술이 엉성해 세동강 난 뼈가 제대로 붙지 않아 한쪽이 7cm 짧게 돼 발을 절게 됐다"고 말한다.

이민을 와서도 오래 서 있을 수 없는 핸디캡이 이어졌다. 봉제공장에서 9년 동안 근무하다 미국 방산업체인 '이스턴 라인 시스템'에 취직했다. 35년 전 은퇴한 그는 매달 양국에서 지급되는 3000달러의 연금을 받고 있다.

수많은 기사 가운데 1992년 흑인 폭동을 우리 시각에서 분석하고 한인사회의 처절한 목소리를 담은 시리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한씨는 "중앙일보와는 이제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의 연을 맺은 셈이지요. 죽을때까지 구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봉화식 기자 bong.hwashik@koreadaily.com bong.hwashik@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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