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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문재인'이 떠올랐을까…文 "위수령 폐지 감회 깊다"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11 02:03

위수령(衛戍令)이 6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위수령 폐지령안을 심의ㆍ의결했다. 위수령 폐지령안은 지난 7월 국방부가 입법 예고한 상태로,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효력을 잃는다. 문 대통령은 위수령 폐지가 결정되자 “위수령이 폐지됐다. 참 감회가 깊다”고 짧게 소감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을 하고 있다. 2018. 9. 11 청와대사진기자단


위수령은 경찰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군 병력을 투입하는 내용으로 1950년에 만들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이를 근거로 병력을 대학교와 시가지에 주둔시켜 시위 학생과 시민을 통제했다. 1965년 한ㆍ일 협정 반대 시위, 1971년 대통령 선거부정 규탄시위, 1979년 부마항쟁 등 실제 위수령이 발동됐던 3차례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 때다.

위수령은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7년 6ㆍ10항쟁 때 발동 직전 상황까지 갔다. 2010년 공개된 ‘작전명령 제87-4호’에는 실제로 당시 군 출동 준비령이 하달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위수령은 막판에 철회됐고, 이는 직선제 개헌을 이룩한 ‘6ㆍ29 선언’으로 이어졌다.

지난 3월에는 군인권센터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정국 때 군 병력을 투입해 참가자들을 무력 진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논란이 됐다. 그러나 국방부는 “감사결과 군병력 투입이나 무력진압 관련 논의내용을 뒷받침할 자료나 진술은 없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그러면서도 “현시점에서 위수령이 위헌ㆍ위법적이고, 시대 상황에 맞지 않아 관련 절차에 따라서 폐지토록 하겠다”고 밝힌 뒤 위수령 폐지령안을 냈다.


위수령이 내려진 경희대의 모습. 경희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교다. [중앙포토]


위수령이 내려진 서울대학교.

문 대통령은 10ㆍ26으로 이어지며 박정희 정권 종말의 계기가 됐던 1979년 10월 부마항쟁과 당시 내려진 위수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강조해왔다.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전문에도 부마항쟁을 명기하기도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위수령이 발동된 1971년은 대통령이 서울에서 재수할 때 신문을 보면서 당시 시국 상황에 대해서 대단히 예민하게 바라보던 시기였고, 1979년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상태로 복학하기 전에 (사법시험) 1차 시험에 합격하고 본인의 불안한 상황과 시국의 불안한 상황, 이런 것이 겹쳐있던 때였다”며 “이날 소회는 위수령에 대한 회한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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