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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메뚜기

전 아칸소대학 정치학 교수
수필가


얼마 전에 곤충과 벌레가 새로운 대체식량으로 진지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글을 읽으면서 불현듯 내 어릴 적 고향 백성말에서 메뚜기 잡던 일이 생각났다. 요새는 메뚜기 스시를 파는 일본 식당도 있다고 하고, 30~40대 이상 한국인이라면 굽거나 튀긴 메뚜기를 먹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멕시코에서는 고급식당에서 튀긴 메뚜기 요리가 개미 요리와 더불어 이색적인 메뉴로 미식가들의 흥미를 자극한다고 들었다.

백성말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후해서 잠시 살던 곳이다. 마을 앞 펑퍼진 논밭 건너 아스라이 보이는 산등성이가 그림 같은 곳이다. 학교 가는 길옆의 실개천을 따라 줄줄이 서 있는 미루나무가 저 멀리 아득하고, 드높은 창공이 시원하게 마음을 탁 틔워주던 곳. 백성말이 백성 마을의 줄인 말일 수도 있고 혹은 마을 근처에서 흰 돌을 본 기억은 없지만, 애초에 백석(白石) 마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어원이야 어쨌든 다들 백성말이라고 했다.

백성말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나무는 잘리고 산은 헐리고 논밭은 메워져 평지가 되었다. 그 위에 커다란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대형 도시가 자리 잡았다. 내가 한국을 떠나고 나서 얼마 안 된 1970년대 초 일이다. 직접 가본 일은 없고 말로만 들었다. 어쩌다 어릴 적 추억과 향수에 젖을 때 마음은 불현듯 백성말로 다름질 친다. 가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인 충동일 뿐 불가능한 일인 것을 나는 안다. 이제는 초토화된 고향을 찾아 무엇하리. 벌써 오래전에 그 근처에는 아예 발길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 기억 속에 아름다운 꿈처럼 간직된 내 어린 시절 백성말의 추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

나는 이 백성말 시골에 2년 남짓 살았다. 십 리도 넘는 학교를 동네 애들과 매일 걸어서 다녔다. 집에 오는 길 동네 못미처에 논에 댈 물을 저장해 놓은 작은 연못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옷을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뛰어들어 미역을 감고 헤엄을 쳤다. 처음에는 몸에 달라붙는 거머리가 겁났지만, 손바닥으로 잽싸게 때려 거머리를 떼어버리는 요령을 알게 됐다. 여름에는 땀에 젖어 돌아오는 십리 길에 늘 들르는 ‘참새 방앗간’이었다. 옷을 입기 전에 모두 연못 둔덕에 쭈그리고 앉아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리곤 했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잊히지 않는다.



책보자기를 마루에 던져 놓기가 무섭게 우리는 들로 산으로 마구 쏘다녔다. 벼가 영글 무렵에는 메뚜기를 잡으러 논두렁을 헤맸다. 강아지풀 줄기를 잘라 메뚜기의 등을 줄줄이 꼬치구이처럼 꿰곤 했다. 잡아 온 메뚜기를 아궁이 불에 구워 먹었다.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메뚜기의 맛이 지금도 혀끝에 아련하다. 내가 지금 기억하는 메뚜기는 세 가지다. 벼메뚜기, 방아깨비 그리고 송장 메뚜기다. 우리는 벼메뚜기만 잡아먹었다. 방아깨비는 큰 놈들은 길고 커서 징그러웠고, 갈색의 송장 메뚜기는 못 먹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 중에 방아깨비를 먹는 용감한 애들도 더러 있었다. 맛있다고 나를 충동이기도 했지만, 비위가 약한 나는 끝내 거절했다. 요새도 시골에서 메뚜기를 잡아먹는지 나는 모른다.

나의 메뚜기를 보는 시각이 바뀐 것은 1970년대에 방영된 인기 TV 시리즈 ‘쿵후’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쿵후’의 주인공 케인(데이비드 캐러딘)이 어려서 샤오린쓰 사찰(소림사)에서 무술 수련을 받을 때 그의 사부 그랜드 마스터 칸(필립 안)과 장님 사부 포(케이 루크 )가 케인을 부르는 애칭이 ‘메뚜기(Grasshopper)’였다.

주인공 케인의 캐릭터와 연기에 푹 빠진 나는 ‘그래스하퍼’ 의 팬이 되었고 먹는 메뚜기는 내 관념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스하퍼’ 케인은 1870년대 미국 서부 개척 당시 무법지대를 방랑하며 탁월한 쿵후 실력으로 악인을 징벌하는 히어로이다. 내가 어렸을 때 백성말에서 마음대로 잡아서 구워 먹던 하찮은 미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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