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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칼럼] 오늘 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5/23 15:55

“젊은이들보다 더 활기차시네요. 매일 운동하시고…” “늙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안 하면 점점 더 굳어지니까!”

운동장에 갈 때마다 눈인사만 건네던 어르신과 나란히 러닝 머신에서 걷던 아침이었다. 인사를 드렸더니 얼굴에 평온하게 자리한 주름살만큼 인상 좋은 그녀는 단숨에 치열하게 달려온 삶을 펼쳐놓았다. 결혼과 동시에 태평양을 건너와서 평생 직장을 다니다가 은퇴하셨다고. 장성한 자제들은 독립했고 5년 전 남편과 사별 후 홀로 사신다는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외로운 노년에 저토록 씩씩하게 살 수 있을까 싶었다. 72세에 아침마다 드넓은 운동장을 누비며 줌바에 요가, 근력운동에 이르기까지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도 경이로운데 매일 오후 1시면 회사에 출근하신단다. 놀면 잡념이 생기니까 평생 밥벌이 도구였던 전공을 되살려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하신다니 존경스러웠다.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인지 외양이 중년에 버금갈 만큼 짱짱하고 의식도 어찌나 예리한지,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르신의 삶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몇 년 전 함께 공부했던 또 다른 어르신의 삶이 천둥처럼 달려들었다. 당시 70이라던 그분은 은퇴한 의사였다. 그분은 뵐 때마다 마치 내일 세상이 끝나는 양 한숨을 내쉬었다. 일선에서 물러나니 삶의 희망이 없다고, 매일 아침 눈을 떠도 할 일이 없고 인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허무하다고 탄식을 하셨다.

할 일이 없으니 하루하루 견뎌내는 일이 고통이라던 그분을 뵐 때마다 내 가슴도 답답했다. 광속으로 내달리는, 전대미문의 역동적인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이 정지 화면 같다니,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 같은 연배로 동시대를 살아도 어떤 이는 변화를 수용하고 주변에 활기를 퍼뜨리며 노년에도 성장하는 삶을 살고 어떤 이는 마치 장수가 재앙인 양 변화에 저항하며 희망 없는 삶이 지옥 같다니 말이다.

아직 노년이 되어보지 않아서 한 어르신의 영혼을 휘감은 여생의 비관을 나는 가늠할 수가 없다. 허나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겠다. 기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영웅도 천재도 현역에서 물러나 집안에 들어앉아 세상과 단절되면 인생무상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테다. 덩달아 생의 종착역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이르면 슬픔이 영혼을 잠식하고, 노화의 징후로 몸과 마음과 머리가 따로 노는 당혹스러움에 펑펑 울고 싶은 날도 많으리라. 하지만 어쩌랴. 달도 차면 기울고 세상만사가 때가 되면 쇠락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인 것을. 제아무리 예쁜 꽃도 열흘을 못 가지 않은가.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가 “오늘 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고 외친 것도 다름 아니리라. 살아있는 오늘에 감사하며 주어진 생을 허투루 낭비하지 말고 불꽃을 튀기라고. 어제 생을 마감한 그 누군가는 오늘을 처절하게 기다리다가 결국 스러졌다고. 신이 하사한 오늘을 온전히 충만하게, 풍요롭게 사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당부한 것이 아닐까. 그 가운데 누리는 소소한 기쁨이 지복이요, 그것이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말이다. 5월, 짙푸른 신록을 경탄하며 떨고 있던 나를 후려친 것은 여생을 만끽하고 계신 어르신만이 아니다. 어둑새벽, 노트북을 열다가 충격을 받았다. 나이 오십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더니 10년 만에 여섯 번째 책을 냈다는 지인의 소식, 하루하루 순간순간에 몰입한 삶이 그녀를 어엿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여섯 번째 출간계약을 하고 세상에 책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을 읽어 내려가는데 감동이 물결쳤다. 그녀를 롤 모델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가슴을 메웠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늙어가니까, 뭐가 잘 안된다는 말을 달고 산다. 늙어가니까 몸이 말을 안 듣고 기억력이 둔화하여 무엇이든 까무룩 잊어버린다고, 몸과 머리가 따로 놀아 일 진행이 더디다고 내 게으름을 변명하기 바쁘다. 인터넷 서핑하느라 시간을 뭉텅이로 쓰면서 말이다. 그뿐이랴, 종종 남편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65세만 되면 은퇴하시라. 평생 일에 파묻혀 살다가 홀연히 생을 마감하면 얼마나 슬프겠냐고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답이 있을까만, 언제고 종착역이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전심전력하며 충만하게 사는 것이 오늘밤까지 동시에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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