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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평안이 있는 땅 위의 천국

켄터키주에 사는 옛 친구를 보러 가는 남편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나는 바다를 찾아 집을 나섰다. 남쪽으로 운전하고 가는 길에 비가 많이 와서 플로리다주로 향하던 목적지를 미시시피로 바꿨다. 비 맞으며 혼자 바닷가를 헤매는 것보다는 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자 싶었는데 일하는 동생들은 나와 놀아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결국 혼자서 볼거리를 찾아 다녔다.

어릴 적부터 바다를 좋아했지만 산은 멀고 바다는 가까운 남부에 오래 살았던 탓에 바다와 더욱 끈끈한 감정을 나눈다. 바다를 보면 내 가슴이 활짝 열리고 기분이 좋다. 그리고 바다가 아무리 얼굴을 바꾸어도 늘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눈 앞에 보면서도 그리워한다. 한가지 더 기분 좋은 것은 바다를 보면 세월의 흐름을 잊는다. 바다가 주는 축복이다.

쨍하고 더운 날 해변의 벤치에 앉아서 시간의 흐름을 잊으니 세상이 평화로웠다. 천국은 바로 이곳, 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평안을 주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천국이 아닌가. 더구나 어머니와 자주 찾았던 해변이니 어머니가 옆에 앉아 계신듯한 행복한 착각에 빠져서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다.

어머니 생전에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던 그때는 그 순간이 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었음을 미처 몰랐다. 많은 자손들의 근황을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염려가 조금씩 감사의 기도로 바뀌었고 또한 슬그머니 과거로의 여행을 하시며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친지들과의 추억을 되살려 행복하시던 어머니가 서서히 언어를 잃고 그저 물끄러미 바다를 응시하실 적에도 삶의 순환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지금 알고 있는 존재의 의미를 왜 그때 간파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다.



바람 한점 없어 해변에 자란 갈대밭이 정물로 멈췄다. 나처럼 벤치에 앉은 사람은 드문 있어도 물놀이 하는 사람 하나 없어 은빛으로 번쩍이는 모래사장도 한적했다. 푸른 하늘에 흩어진 몇 점 구름을 따르다가 모래밭에 발을 찔러 넣었다. 전신으로 번지는 열기에 나를 맡기며 바다를 마주보니 나도 가까이 있는 키가 작은 야자수를 닮았다. 그렇게 서서 철썩이는 물소리에 묻어온 스토리를 듣고자 귀를 기울이니 엉뚱하게 갈매기들이 “우리 여기 있소” 하며 다정하게 다가왔다.

지난 5월, 카리브해의 작은 섬인 프랑스령 세인트 바르델레미에서 큰딸네와 함께 보낸 휴가가 떠올랐다. 넓고 푸른 바다를 처음 본 2살짜리 손자는 흥분해서 “바다야 바다야” 소리치며 좋아했다. 우리는 섬을 돌면서 매일 다른 해변에서 새로운 바다를 만났다. 더러는 밝고 고운 비취색이고 더러는 짙푸른 사파이어 보석같은 바다였다. 파도가 잔잔한 바다는 소근소근, 파도가 세찬 바다는 우렁차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얀 모래알을 두 손으로 한껏 잡았다가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 모래성을 높게 쌓아서 예쁜 조가비를 보호했다가 순식간에 무너뜨리며 박수치던 아이의 웃음 소리는 파도에 실려나갔다. 물에 겁없이 들어섰다가 파도에 밀려 도망치듯 뛰어나오던 아이의 당혹한 표정조차 이제는 소중한 추억이 됐다.

더위에 지친 아이가 멀리 수평선 건너를 가만히 주시하던 것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아이가 찾아 나설 세상이 궁금했다. 더욱 아이가 성장해서 세상의 모든 신비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상상하니 재미있었다. 아이가 색다른 환경과 만나는 순간들을 목격하고 싶은 욕심에 오래 살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해변을 걸으면서 이 세상에서 내가 해야하는 일을 생각했다. 광활한 바다는 내 할머니가 나에게 베풀어주신 따스한 정과 내 어머니가 나의 딸들에게 심어준 사랑의 나무처럼 나도 다음 세대 자손의 마음에 바다같이 크고 깊은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는 임무를 잘해야 한다고 일러줬다. 인간애의 순리를 가르쳐줬다.

그러나 이번에 땅 위의 천국인 바닷가에 머물면서 두 여동생을 보고 받은 충격에 가슴 깊숙이 아픔을 느꼈다. 노인층에 진입한 동생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그래도 여동생들의 주름진 모습에서 어머니를 본 것은 영원한 바다를 닮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이다. 나와 동생들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무조건 오늘 받은 축복에 감사하자고 마음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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