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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성탄을 그리던 아이의 큰 눈망울

2013년 12월 25일 성탄절 아침 도미니카의 빈민가 작고 허름한 교회에는 시카고에서 온 16명의 방문객들과 그곳을 가득 채운 80여명의 동네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풍선을 들고 선물 꾸러미를 받아든 아이들은 마냥 행복한 표정들이었지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한 어른들도 어울려 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교회의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교회 옆에는 긴 나무들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벽과 나무 판자들을 이어 하늘을 간신히 가린, 곧 쓰러져 버릴 것 같은 교실이 있었습니다. 그곳엔 색 바랜 나무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작고 마른 한 소녀가 눈에 띄었습니다. 삐걱이는 나무문 소리에 크고 깊은 두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지요. 소녀는 선물로 받은 12색의 크레용을 소중히 품에 안고 하나씩 빼어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리고 있었고, 소녀의 어깨위로 따사한 햇살이 내려앉아 참으로 편안한 고요가 실내에 퍼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성탄 카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크리스마스 한 장면이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도, 징글벨 울리는 눈썰매도, 선물들을 쌓아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도 그곳엔 없었지만 그곳엔 온 마음을 쏟아 성탄을 그리는 아이의 큰 눈망울이 햇빛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편안함을 모아놓는다 할지라도 그 지극한 고요 앞에 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그곳엔 낮은 데로 임하시는 성탄의 참 모습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시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시는 성탄의 주인공 예수님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네 발끝에만 매어있던 네 눈을 들어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빚진 자로 살아야 함을 마음에 심어 주셨던 날. 도미니카의 작은 마을 쓰러져가는 교실 어린 소녀의 어깨위로 오신 아기 예수.

그날 이후, 크리스마스가 돌아올 때마다 그 작은 교실의 소녀가 자꾸 생각나는 건 아직도 빚진 자로 살지 못하는 부끄러운 내 모습 때문이 아닐런지. 오늘도 소외되고 굶주린 세상의 구석 구석에서 아프고 상한 마음의 상처들이 당신의 품 안에서 녹아내리기를... <시카고 문인회장>



인 카네이션-신호철

꽃 길 손저으고
가시밭 길 품은
신들매 들기 조차 힘든
깊은 속 울림이
무서리 내린 새벽
두손 모아도
부끄러운 난
어찌 색으로 필까
무너진 나를 세우려
흘린 물과 피
바람에 젖어
붉게 피어날까
스텐그라스 창을 통해
내 무릎 위에 앉은
투명한 아침 햇살
상실후 다시 스미는
인 카네이션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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