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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인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손을 내저으며 걸어야 하는 당혹감에 그만 주저앉아 버리고 말 것이다.

보고 싶은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고, 가을 하늘의 맑고 푸르름도, 온 천지 위에 하얗게 쌓이는 겨울밤의 설레임도 더 이상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른봄 날개를 펴는 애처로운 목련도, 마른 가지마다 살아나 움트고 연둣빛 여린 잎사귀들을 피어내는 경이로움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무수히 넘어질 것이고, 무릎도 손과 발도 성할 날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밥도 국도 반찬도, 좋아하는 커피도 내손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이게 바로 지옥 같은 삶이 아니겠는가..

2009년 겨울 매서운 바람이 불어 사람들은 외투의 깃을 올리고 총총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던 날. 난 루터란 병원 수술실에 누워있었다. 전신 마취가 풀릴 때까지 난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시간은 자유로이 춤추며, 내 유년의 마을과, 어머니와, 대학의 켐퍼스를 지나 이곳 시카고의 낯선 병원의 수술실까지 넘나들었을 것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내 눈엔 붕대가 감겨져 있었고, 한쪽 눈의 불편한 시야로 부쩍 어른이 되어버린 아들의 어깨에 기대 병원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볼 수만 있다면... 볼 수만 있다면... 내 마음속 깊은 절규는 어둡고 짙은 바다의 깊음으로 한없이 빠져가고 있었다. 볼 수 없었던 3개월 동안 처음으로 어두움과 친근하게 사귀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깜깜한 것만은 아니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더 가까이 더 깊이 내게로 오는 얼굴들이 있었고, 푸르름의 손짓과 노래들이 그 안에서 나를 불렀다.

어두움은 오히려 고요와 함께 다른 색깔들을 내게 넌지시 보여 주었고, 두려움은 어둡고 깜깜한 침전의 답답함에서 오히려 또 다른 자유와, 기쁨과, 환희를 용암처럼 분출하고 있었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기에, 어렵고 힘든 시간 속에서도 은혜와 오히려 감사의 순간들이 한걸음 한걸음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빛이었고, 소리였고, 나의 눈을 어루만지는 거룩한 손이었다.(문인회장)

눈을 감으면 / 신호철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인다
너무 멀어 볼 수 없는 곳까지
눈을 감으면 볼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더 크게 보인다
너무 작아 무엇인지 알 수 없었는데
눈을 감으면 크게 보인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들린다
소음 때문에 들을 수 없었던 소리
눈을 감으면 잘 들린다

눈을 감으면
눈을 감으면.....
저 멀리 파도가 몰려오는 저 끝자락
쉴 곳을 찾는 바닷새
힘든 날갯짓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흐르는 세월
부서지는 투영 속 적신의 몸부림
가슴을 치는 힘겨운 삶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오래 견디어 내었기에
부를 수 있는 나의 노래도 들린다

바람이여, 강물이여, 나의 노래여
맘속에 흘러 나를 일으키게 하라
어찌 흔들리겠는가
어찌 깊이 만나지 않겠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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