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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환 칼럼] 수첩이 필요해

"젊은 친구들과 대화라도 하려면 꾸준히 공부를 해야 돼.” “연륜, 경험이라는 게 있잖아. 그 체험에서 느끼는 게 중요해.”

70대 후반의 노신사 세 분의 저녁식사 중 대화다. 한 분은 다 옳다고 추임새만 넣는다. 다른 한 분이 전화번호를 묻는다. 이를 수첩에 적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옮기는 손길이 익숙한데 이건 온라인-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경험의 지혜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이름만 알았지 전화번호를 기억할 일이 사라졌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스마트폰이 없다면…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전화할 수 있을까. 기억나는 친구 전화번호가 하나라도 있기나 한가. 편리함을 즐기고 의존할 때 그 수단이 사라졌을 때를 돌아보는 일, 전화번호가 담긴 수첩은 그 대비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가속도가 붙고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20세기 때 보다 한 세대를 더 길게 살아내는 시대다. 개개인이 새로운 기술, 새로운 가치에 적응하며 살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내 안의 세대 교체, 세대 적응이다.



눈과 귀에 모두 익숙한 시어스가 요즘 경제뉴스 헤드라인에 자주 오른다. 점포 정리와 리모델링, 구조조정이 계속되더니 이번엔 파산신청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다. 시카고의 대표적 건축물 시어스 타워가 9년 전 이름을 잃었을 때 서운한 감정을 느낀 사람들이 꽤 많았을 거로 믿는다.

이민 초기 한인들이 귀국길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많이 찾았던 로렌스길의 시어스가 2년 전 문을 닫았고 골프밀쇼핑센터 안에 영원히 있을 것 같았던 시어스백화점도 2개월 후면 폐점이다.

시어스는 19세기에 시작해 20세기를 풍미한 기업이다. 미네소타에서 재고 시계를 팔던 청년 시어스와 시계 수리공 로벅이 1887년 시카고로 이주, 여기서 회사를 세우고 카탈로그 우편판매 사업을 본격화한다. 시계뿐 아니라 품목을 크게 늘렸다. 카탈로그는 미 전역에 뿌려졌고 우편주문도 폭발적이었다. 연말이면 선물용 카탈로그를 찍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시어스는 소매기업의 대명사였고 시어스 타워는 그 상징물이었다. 미국 전역에 백화점을 늘리는 중에도 카탈로그 우편판매 비즈니스는 1993년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4년 시애틀에서 아마존이라는 온라인 전자상거래 회사가 설립된다.

시어스가 그 판매망, 유통망으로 전자상거래를 먼저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발상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카탈로그 우편판매라는 획기적인 판매유통방식은 130여 년 전의 일이다. 1세기가 넘게 다져온 체질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시어스는 운이 없었다. 20세기말 월마트와 소위 ‘브릭 앤드 타르’ 소매체인 경쟁을 하느라 온라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결국 시어스의 카탈로그 판매 시대와 아마존의 온라인 시대는 1년 사이에 지고 떴다. 그 이후 우리는 아마존이 소매유통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시어스는 7년 연속 순손실을 겪다 못해 파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람의 수명은 길어졌으나 새로 태어나는 기업의 수명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19세기의 카탈로그는 1세기를 조금 넘게 버텼으나 과학 발전의 속도를 보자면 다음 변화는 무엇일지 감이 오지 않는다.

사람이 기업을 만든다. 수명이 길어진 사람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다 겪었다. 시어스에 주문도 해봤고 아마존 택배에도 익숙한 사람들이다. 다음 변화의 낌새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 수첩에서 다시 찾아야 할 지 모른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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