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문학칼럼] 품격있는 사람...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잊혀질만하니 동생 조현아 전무의 물컵 사건으로 항간이 떠들썩하다 못해 각국 언론에 오르내리고 또 ‘대한’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는 국민 청원도 일어나고 있다.

갑질이란 무엇일까? 갑질을 당하는 을들은 누구일까?

갑질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월급이라는 생계수단을 손에 쥐고 직원들의 인격을 난도질하는 하기도 하고 권력과 위계라는 상하관계를 기반으로 성적으로 접근하면요즘 말하는 미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모든 갑질의 기본은 인격모독을 깔고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럼 갑질을 대하는 을들의 자세는 어때야할까? 을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갑질을 당해야 하는 걸까? 글쎄, 갑질에는 올바른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을이 감수해야할 고통과 자괴감에도 충분한 위로는 없다. 갑과 을의 시작은 계약을 하면서 편의상 붙인 명칭일 뿐이지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등급을 매긴 것은 아니니까.





갑질의 출발은 부나 권력이 아닌 온전한 갑의 인격일 뿐이다. 또 진정한 인격은 익명성의 보호 아래에서도 여전히 한결 같아야한다. 세상 참 좁다. 가뜩이나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인, 돌아보면 좁은 한인 사회에서의 평판을 무시할 수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확신하건데 평판이 또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둘러싸인 환경에서의 평판을 좋은 방향으로 쌓아올리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어김없이 꾸물거리며 갑질, 즉 슬쩍 감춰두거나 꾹꾹 눌러뒀던 날카로운, 저렴한 인격이 솟아오른다.



비즈니스를 하는 A는 심심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생트집을 잡는 진상손님 B에게 질려있었다. 한번씩 B가 다녀가서 영혼을 탈탈 털린 날이면 A는 친한 친구 C에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물론 C도 그런 무식한 사람이 어딨냐며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었다고 같이 열변을 토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남편에게 가게를 잠깐 맡기고 C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B가 눈앞에 나타났다. 알고 보니 B는 손맛이 좋아서 곧잘 음식을 해서 나눠주신다는 C의 시어머니였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A 보다 더 당황한 사람은 진상 손님인 B였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B에게는 A에게 보여준 자신의 인격 따위를 수습하거나 사과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며느리인 C에게만 좋은 시어머니면 되었다. 친구 C가 냉장고에 반찬을 정리하는 사이에 당황하고 있던 A에게 슬쩍 다가온 B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쓸데없이 내 이야기 우리 며느리한테 하지 말고 커피나 자시고 가셔.”

A는 어이가 없었지만 또 생각해보면 굳이 친구 C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가슴에 묻었는데 몇 달 후에 반전이 일어났다. 진상 손님 B가 찾아와서 이제는 대놓고 며느리 친구 집이니 이것저것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꼭, 며느리에게는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맘 통하는 몇 안 되는 친구였는데, B 때문에 C까지 미워보여서 요즘 A는 고민이 많다.



교회 안에서, 동호회 안에서, 동문회 안에서, 비즈니스 협회나 학부모회 안에서 우리는 너무나 호의적인 사람들이다. 아니, 공들여 쌓아 올린 평판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혹은 차곡차곡 평판을 쌓아올리려 노력하느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를 쓰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품격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진정한 품격은 온전히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인터넷 세상이나, 혹은 유대관계가 필요하지 않은 타인,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게도 어느 보험회사의 카피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인간적인 배려와 호의가 묻어 나오는 것이다. 진심으로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춘 사람은 갑질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갑질이라는 것 자체가 인격의 결핍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