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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회의주의에 대한 회의주의

하루 종일 회의만 하느라 정작 일을 못 하겠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점심은 어차피 하지 않느냐며 오찬 회의들이 잡히는데 오찬도 다 차버리니 저녁 회의로 넘어간다. 저녁 회식을 하면 단합이 될 거라는 구시대적 신념의 잔재가 남아있다. 회식 자리에서 취중에 결정이 이뤄지니 문제다. 저녁 시간도 꽉 차버리니 아침 먹으면서 하는 조찬회의로 흘러넘친다. 새벽잠이 없는 분들께는 조찬회의가 좋겠으나 아직 아침에 자야 하는 차세대 직원들에게 아침형 인간을 강요하는 건 지나치다. 반쯤은 졸면서 하는 회의가 하루 종일 어떤 수면 효과를 줄까 고려해 주시기 바란다.

아침.점심.저녁이 꽉 차버리니 주말로 회의가 넘친다. 엠티다 워크숍이다 하는 이름으로 주말에 빠져나갈 수 없는 외진 곳에서 회의를 연다. 꼭 필요하거든 주중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 앞에선 바비큐 맛있다고 직원들이 맞장구 쳐주지만 속내는 절대 안 그렇다. 주말까지 시간이 꽉 찬 후에는 분신술의 바로 아래 단계인 두 탕 뛰기 신공이 등장한다. 한 회의는 빨리 떠나고 다른 회의는 지각하면서 얼굴도장만 찍는 신공인데 이래서 무슨 회의가 될지는 모르겠다.

아침 점심 저녁에 주말까지 쥐어 짜내서도 회의가 필요하면 정보통신기술의 총아, 화상회의가 등장한다. 파놉티콘! 빅브라더! 어디에 있더라도 피할 수 없는 회의시스템이다. 지난 10년간 가장 강력한 그물이 생겼으니 그것은 카톡 회의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알림음에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며 흥분하여 맥락도 잘 모르는 채 문자만 보고 중요 결정을 해 버린다. 계속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데, 잠시 어디 다녀오는 사이에 논의는 저만큼 가서 다 결정되어 있다. 카톡 회의방의 구속력은 강력하다. 마음 굳게 먹고 빠져나와도 다시 초대 당해 끌려 들어가는 반복은 거의 빠삐용의 눈물겨운 탈출과 유사하다. 참고로 필자의 카톡 프로필은 "카톡을 하지 않습니다."

회의에 대해 회의하게 되는 회의를 위한 회의를 이야기하다 보니 회의에 대해 회의적으로 들리겠지만, 좋은 회의는 정보를 제공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활기를 주고 방향을 제시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좋은 회의에서는 적절한 자극을 받고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은 개개인이 다양하고 분산되어 있고 다이내믹한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협력과 이해를 위한 좋은 회의는 중요하다. 좋은 회의의 조건 몇 가지.



첫째, 회의는 짧고 굵어야 한다. 모두 다 바쁘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서 간단히 마쳐야 하며 집중할 수 있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집중을 위해 디지털기기 금지는 필수.

둘째,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안건에 대해 미리 알고 들어와 핵심 사안만 논의하면 된다. 사안과 관련된 구성원이 다 참여했는지도 중요하다. 기껏 회의해 놓고는 "그럼 담당자 A님을 모시고 다음에 다시 회의하자"는 말은 회의감 느끼게 한다.

셋째, 회의는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리다. 일방적인 설교나 훈시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시간. 서로를 평가하는 자리도 아니다. 의견이 같아야 하는 거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 못 본 것을 확인하고 차이를 비교할 때 성찰을 얻게 된다.

넷째, 그러려면 참석한 사람은 최소한 한마디씩이라도 다 참여해야 한다.

다섯째, 잘 기록해야 한다. 각자의 해석과 기억은 죄다 다르다. 대개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여섯째, 내용이 중요하지 PPT나 회의자료 예쁘게 만드느라 힘 뺄 필요 없다. 일곱째, 선명한 결론이 내려지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항목이 나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회의에서 합의한 것은 준수해야 한다.


송인한 / 연세대 교수·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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