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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밭농사, 사람 농사

며칠 전, 방원씨가 뒷마당에서 땄다며 상추를 한 바구니 줬다. 아직 덜 자란 아기상추라 아기 손바닥만 한 게 앙증스러웠다. 곧 몬태나로 떠나는 내게 맛보게 하려고 먹을 만한 것 같아 아직 이르지만 땄다고 한다. 아기상추는 어찌나 잎이 보드라운지 살짝 건드려도 멍이 들 정도였다. 열무김치와 함께 밥도 비벼 먹고, 깻잎과 함께 삼겹살도 싸먹고, 오이와 아보카도와 함께 샐러드도 만들어 먹었다. 아무리 어려도 상추는 상추인지라 약간 쌉스레하나 제법 상추 향을 풍겨 그 상큼함에 모처럼 입맛이 살아났다.

마리아씨와 만나 공원에 가서 걷기로 한 날은 비가 왔다. 아침을 먼저 먹기로 해서 아침을 먹다 보니 비가 어느새 그쳤다. 예정대로 공원으로 가서 걸었다. 비가 온 뒤의 공원은 대청소하고 난 집처럼 모든 게 말끔하고 청정했다. 들꽃들 사진도 찍고, 꽃 이름도 찾고 하다가 농사 얘기가 나왔다. 마리아씨는 늘 텃밭 농사를 하던 터였고, 브루클린 아파트에 사는 지금은 온갖 다육이들의 여왕이다. 각양각색의 다육이들이 아파트 창가에서 마치 작은 온실인 양 저마다 미모를 자랑하는 바람에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다.

오남매를 낳고 기른 텃밭이 있는 집은 세를 주었으나 만들어 논 텃밭을 놀리는 게 아무래도 아깝더란다. 그래서 마음먹고 모종들을 여러 가지 준비해서 이번 봄에 심었다고 한다. 밭에 채소를 애써 심어 놓으면 어느 집이나 토끼들이 와서 다 따 먹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먹을래면 먹어라, 하는 마음으로 일단 심었다고 한다. 비 온 뒤라 그런지 공원엔 꽤 많은 토끼들이 출몰했다. 토끼를 보고 신이 난 내가 토끼 사진들을 찍자 마리아씨는 그 토끼들을 가리키면서 "그런데 쟤네들도 건강식을 아나 봐요. 상추니 고추니 다 남겨 놓고 케일만 싸악- 다 따 먹었어요. 얄밉지 않아요?", 하는 바람에 "진짜 얄밉다!", 맞장구를 치는데, "요즘 세상은 야생동물들도 건강식을 하나 봐요", 하는 바람에 빵 터져서 둘이 배를 쥐고 웃었다.

요즘 시대의 키워드는 건강이고, 건강을 위해서는 유기농 작물을 먹는 게 첩경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텃밭은 모든 사람들의 워너비가 되었다. 집을 가진 친구들은 거개가 뒷마당에 텃밭 농사를 짓는다. 아파트에 사는 나는 가끔 얻어먹긴 해도 그게 늘 부럽다. 다행히도 7월 한 달을 몬태나 가서 지내므로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몬태나는 시골이라 그런지 대부분 집들이 텃밭을 가지고 있다. 웬만하면 라즈베리 나무들도 마당에 있고, 플럼 나무도 있다. 호박 , 오이, 스위트피, 방울토마토, 가지, 고추 정도는 기본이다.



보즈맨에서 살고 있는 막내 역시 텃밭이 있다. 부추는 한번 심으면 계속 나오고, 오이와 깻잎, 고추, 호박, 토마토 2 종류, 브로콜리, 양파 등을 심었다고 한다. 민트와 베이즐, 오레가노도 계속 나온다. 작년에 내가 취나물과 참나물 모종을 갖다 심었는데, 나왔다는 말이 없다. 고랭지대라선지 몬태나선 쑥갓이 제대로 크지 않는데, 아마도 참나물과 취나물도 그래서 그런가 보다.

농사는 땅도 중요하고, 기후도 중요하고, 날씨도 중요하다. 물론 '좋은 농사꾼에게 나쁜 땅이 없다.'는 옛말처럼 땅의 속성은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자연 환경은 하늘의 영역이다. 날씨와 바람과 눈과 비가 그 해 농사의 관건인데, 자연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도 컨트롤할 수 없으니 농사에선 늘 희비가 엇갈린다.

사람들은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한 사람 얘기를 들으면 "그 집은 자식 농사를 잘 지었네.", 부러워하며 자식을 농사에 대비한다. 그만큼 자식 교육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한탄이다. 같은 밭에 심은 같은 작물이 그 크기와 색이 다르듯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들도 하나같이 개성이 다르다. 아무리 부모가 애를 써도 문제아가 되기도 하고, 내버려둬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나는 돌연변이도 있다. 그래서 부모의 절대적인 진심이 관건이 된다. 어떤 환경에서든 끊임없는 애정으로 부모가 노력하고 진화해가면 자식들 역시 더 크게, 더 아름답게 피어난다.

농사를 그리워하다가 사람 농사로 생각이 비약했다. 밭농사나 사람 농사나 세상만사 원리는 늘 이렇게 하나로 귀결된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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