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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와 함께 성장한 TV

새로운 매체였던 텔레비전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쳤고, 그들은 어떤 영향을 주었나? 미국 ABC 방송은 1954년 서부극 시리즈 '데이비 크로켓(Davy Crockett)'을 내놓으면서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
'데이비 크로켓, 인디언 전사'라는 제목의 첫 회로 시작된 '크로켓' 시리즈는 모험가 크로켓의 남성적 영웅담을 바탕으로 한 진지한 드라마였다.


월트 디즈니가 새로 문을 연 놀이공원 디즈니랜드의 프론티어랜드를 홍보하려고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디즈니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첫 회가 방송되기 전 촬영된 3회 '알라모 요새의 데이비 크로켓'에서 주인공 크로켓을 죽여서 시리즈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첫 회가 방송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려 4000만 명이 시청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크로켓' 관련상품(장난감 포장마차.기타.너구리 모피 모자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이 상품들은 1년도 안 돼 3억 달러(요즘 달러 시세로 따지면 약 2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당연히 디즈니는 부랴부랴 죽은 크로켓을 살려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일을 'TV의 마술'이라고 부른다.


나이 든 디즈니는 하마터면 '해피밀'(무료 장난감이 들어있는 맥도널드의 어린이용 세트 메뉴) 같은 대박 상품을 놓칠 뻔했지만 그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는 TV라는 새로운 매체와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완벽한 폭풍'에 허를 찔렸다.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TV가 "수백만 명이 동시에 같은 농담을 즐기게 해주면서도 그들을 여전히 외롭게 만든다"고 말했다.


개개인에게는 맞는 말이겠지만 베이비붐 세대와 TV는 함께 성장하면서 같은 세대의 유대감을 형성했다.
베이비붐 세대 중 '베벌리 힐빌리즈(Beverly Hillbillies.1960년대 시트콤)' 주제가를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그들은 너구리 모피 모자와 플라스틱으로 된 미키마우스 귀를 샀다.
1977년에는 '해피 데이즈(Happy Days.1974 ̄84년 방영된 시트콤)'의 등장인물 폰지가 드라마 속에서 도서 대출 카드를 이용하자 청소년 약 50만 명이 도서 대출 카드를 신청했다.


다 좋은 일이다.
그리고 돈벌이도 잘되는 사업이다.
그러나 자의식 강하고 자기도취적이기로 유명한 베이비붐 세대가 16세가 되기 전에 깊이 있는 뭔가를 추구하는 대신 TV를 시청하며 보낸 시간이 개인당 1만2000시간이 넘었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베이비붐 세대는 정확히 TV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유아교육용 프로그램)'나 저녁 뉴스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공통적 경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TV는 이 세대에게 그들 자신에 관해 뭘 가르쳤을까?

처음에는 주로 주류사회의 가치관을 가르쳤다.
결혼한 부부가 각각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자고, 말(馬)들은 말대꾸를 해도 아이들은 좀처럼 그러지 않았다.
또 출연자 거의 모두가 백인이었다.
"모든 출연자가 나이 들어 보였다"고 '네트워크와 케이블 TV 황금시간대 프로그램 자료집'의 저자 팀 브룩스는 말했다.
"출연자들은 모두 정장을 입었다.
심지어 밀턴 벌리(최초의 TV 수퍼스타로 꼽히는 코미디언)까지도." 물론 TV는 재미있었다.


'왈가닥 루시(I Love Lucy.1950년대 시트콤)'는 지금도 미국 TV 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두 프로그램 중 하나로 꼽힌다.
[다른 한 프로는 '메리 타일러 무어 쇼'(The Mary Tyler Moore Show.1970 ̄77년 시트콤)다.
이의 있으면 말하라.] 그러나 순전히 현실도피였다.


1968년 시청률 3위를 차지한 TV 프로그램 '미 해병대원 고머 파일(Gomer Pyle, U. S. M. C. )'은 실수투성이의 이등병(짐 네이버스 분)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 베트남전은 언급되지 않았다.
"구정 대공세(1968년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주도한 공격)가 있었던 해에 당시 미 해병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였지만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하게 되는 가장 큰 걱정은 '고머가 점호 사열에 걸리지 않도록 로커를 깨끗이 정돈했을까'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고 시러큐스대 TV와 팝문화 학자 로버트 톰슨이 말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가 초기 TV에서 궁극적으로는 아이러니라는 집단의식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텔레비전은 그들이 성장하면서 겪은, 사회적 의식의 고양을 도모하는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톰슨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TV를 좋아했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대응수단은 역설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경향은 나중에 영화 '브레이디 번치(Brady Bunch.1995)'에서 드러난다.
어떤 것을 아주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비웃는 행동을 표현한 걸작이다.
"

1960년대가 무르익으면서 TV가 사회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스마더스 브라더스 코미디 시간(The Smothers Brothers Comedy Hour.1967 ̄69년)'은 코미디언 팻 폴슨을 내세워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을 풍자한 코미디를 선보였다[요즘 패러디 뉴스 '콜버트 리포트(Colbert Report)'를 진행하는 스티븐 콜버트도 어린 시절 이 프로그램을 봤을 것이다]. 또 서부극 시리즈 '건스모크(Gunsmoke.1955 ̄75)'에는 아메리칸 인디언 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됐다.


그들의 비참한 처치를 인정하고 민권운동에 보조를 맞춘다는 의미에서다.
그리고 공상과학 드라마 시리즈 '스타 트렉(Star Trek.1966 ̄69)'에는 민족적 배경이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출연했다.
마치 베이비붐 세대를 다독여 앞으로 인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게 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그런가 하면 경찰 수사 드라마 시리즈 '아이언사이드(Ironside.1967 ̄75)'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병역기피자들을 옹호했고, 역시 수사 드라마 시리즈 '모드 스쿼드(Mod Squad.1968 ̄73)'의 한 편 '멀고도 가까운 곳(A Far Away Place So Near)'은 1968년 베트남 밀라이 양민학살 사건을 풍자한 듯했다.


"영화는 이런 스타일의 드라마들을 감히 흉내 내지 못했다"고 1960년대의 TV를 분석한 '그루브 튜브(The Groove Tube)'의 저자 아니코 보드로그코지는 말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당시 그런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아주 대담한 일이었다.
"

물론 문제의식을 지닌 프로그램들은 '왈가닥 루시'와 '보난자(Bonanza.1959 ̄73)' 등 흥미 위주의 볼거리가 주류를 이루던 TV 풍조에서 예외에 속했다.
제작자 노먼 리어는 완고하고 독선적인 주인공과 자유분방한 그의 사위에 관한 코미디 시리즈 '올 인 더 패밀리(All in the Family)'를 방영해줄 방송사를 찾는 데 3년이나 걸렸다.


1971년 CBS가 마침내 이 시리즈를 방영하기로 결정했을 때 방송사 측은 '연소자는 부모의 시청 지도가 필요하다'는 경고문을 내보내고, 항의 전화를 받아 처리할 교환원 20여 명을 배치했다.
그러나 막상 방송이 나간 후의 반응은 의외였다.
"방송사 측은 항의 전화가 거의 걸려오지 않아 놀랐다"고 리어는 말했다.
"아치(주인공)의 대사는 학교 운동장이나 일요일 교회 주차장에서 흔히 들리는 말들이었다.
" '올 인 더 패밀리'는 그 시즌에 시청률 1위를 차지했고, TV는 변하기 시작했다.


'올 인 더 패밀리'의 속편 '모드(Maude.1972 ̄78)'는 낙태 문제를 다뤘다.
또 코미디 시리즈 '굿 타임스(Good Times.1974)'는 공공 주택단지에 사는 서민들의 애환을 그렸다.
'매시(M*A*S*H.1972 ̄83)'는 한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실제로는 베트남전의 비극적인 부조리에 관한 기록이었다.
1970년 '메리 타일러 무어 쇼'가 처음 나왔을 당시의 상황을 톰슨은 이렇게 말했다.


"방송사의 한 간부는 주인공 메리의 이혼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미국인들은 뉴욕 억양을 가진 사람이나 콧수염 기른 사람, 이혼한 사람, 또는 유대인이 주인공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4년 뒤 나온 코미디 시리즈 '로다(Rhoda.1974)'의 주인공 로다는 뉴욕 출신의 유대인이었으며 두 편으로 나눠진 한 에피소드에서 남편과 헤어진다.
"

뉴욕 출신의 유대인 이혼녀가 미국 중류층이 즐겨 보는 TV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바에야 더 이상 무엇이 금기시되겠는가? TV에서 다루지 못할 이야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미니 시리즈 '뿌리(Roots.1977)'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미국 흑인들의 역사를 어떤 고등학교 과정보다 더 상세하게 가르쳐줬다.
또 TV 영화 '때 이른 서리(An Early Frost.1985)'는 할리우드 영화가 감히 그 문제를 들고 나오기 훨씬 전에 에이즈(AIDS)라는 주제를 다뤘다.
그리고 시트콤 시리즈 '30대 이야기(Thirtysomething.1987 ̄91)'는 '사인펠드(Seinfeld.1989 ̄98)'가 나오기 몇 년 전부터 이미 특정 주제가 없는 드라마의 형태를 선보였다.


이 드라마는 베이비붐 세대의 보통 사람들이 진로와 인간관계,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속의 불안감과 씨름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이었다"고 이 프로그램의 공동 제작자 마셜 허스코비츠는 말했다.
"많은 사람은 그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부유한 여피족이다.
어려운 문제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면(베이비붐 세대는 아이러니를 좋아한다) 오늘날 TV는 사회 비판의식을 거의 다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여전히 범죄 수사물('CSI')이나 멜로드라마['그레이 아나토미(Grey Anatomy)']다.
멋지고 매혹적이기는 하지만 내용은 별로 없다.


또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이나 '스타와 함께 춤을(Dancing With the Stars)' 등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너무 복고풍이다.
그 프로그램들은 '로렌스 웰크 쇼'(1951 ̄82년 방영된 뮤지컬 버라이어티쇼)와 다를 게 없다.
'유니트(The Unit)'나 '24' 같은 프로그램들은 과감하게 테러와의 전쟁을 다뤘지만 무비판적으로 미국이 무조건 잘한다는 식의 입장을 취한다.


요즘은 어떤 네트워크 방송사도 감히 '매시' 수준의 풍자를 시도하려 들지 않는다.
(물론 케이블 방송은 대담하고 날카로운 시각을 기대해볼 만한 새로운 세계다.
) TV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세상을 사려 깊게 바라보는 법을 가르쳤지만 오늘날에는 그 교훈이 다 잊혀진 듯하다.
'올 인 더 패밀리'의 주인공 아치는 그의 부인 에디스와 함께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는 노래 'Those Were the Days'를 불렀다.
결국은 선견지명이 있는 행동이었다.


MARC PEYSER 기자
With JOSHUA AL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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