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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구름 한 송이

60여 년 전 이야기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새로 교사 한 분이 부임해 오셨다. 원래가 전주에서 훌륭한 선생님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분으로 그곳 학부모들이 모두 선생님에게 자기 자식을 맡기려고 했다고 들었다. 지식이 많고 잘 가르쳐서가 아니고(물론 그에 대한 이의도 없었지만) 학생 개개인을 하나하나 정과 성으로 보듬어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반은 그분에게서 국어를 배웠다. 후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은 시인이셨다.  전라도가 낳은 한국 시단의 큰 별 신석정 시인과는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였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고교 평준화 이전에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이었다. 그때 초대 교장 길영희 선생은 전국 어디에 훌륭한 교사가 있다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스카우트해 오곤 하셨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라는 신념에 투철하신 분이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그 시인 선생을 삼고초려 끝에 우리 학교로 모셔왔고 우리는 그분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볼 때마다 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인연이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에 ‘원정(園丁)’이라는 시집을 내셨다. 제자들을 가르치며 틈을 내 학교 한 모퉁이에 꽃밭을 만들고  꽃을 가꾸며 자신을 원정이라 하셨다. 그 시집에 ‘비문(碑文)’이라는 시가 있던 것이 기억나 그 시집을 찾아보았다. 태평양을 오가며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용케도 아직 내 서재에 남아있었다.

“나의 비문엔 그저 표표한 공간/구름이나 한 송이 그리면 족합니다/빛나는 내일 하나 품어 보지도 못한 넋이라기엔/너무나도 절절히 애태운 목숨/이 푸른 산마루 양지에 누어/길이 외울 시 하나 갖지 못한/시가 죽어서 묻힌 것이니/나의 비문엔 그저 표표한 공간/구름이나 한 송이 그리면 족합니다.”



스무 살 양양한 나이에 이 시가 좋았던 것은 그때는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죽음 그리고 어설프고 설익은 감상주의 탓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80의 언덕에 선 지금 이 시가 구구절절 절실하게 마음에 와닿는 것은 그저 아득하고 막연했던 먼 미래가 내 눈앞에 현실로 전개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은 스쳐 가는 바람이요, 뜬구름처럼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을 되새기는 일이 요새는 자주 있다.

“삶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 生也一片浮雲起 )/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 스러짐이니( 死也一片浮雲滅 )/ 뜬구름이 본래 실체가 없듯( 浮雲自體本無實 )/ 삶과 죽음도 실체 없기는 마찬가지라( 生死去來亦如然 )”. 생과 사는 뜬구름처럼 실체가 없고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일 뿐이라고 한 예부터 많이 알려진 시다.

생과 사는 실체가 없다는 말은 ‘살아 있는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허상이며 생사의 구별은 작위적이라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물건도 없다.)에 통한다. 세상 모든 것은 본디부터 실재하지 않고 빈 것이라는 이 말은 ‘절대 무의 경지’요 광활한 자유의 경지다. 어느 고승이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서 티끌이며 때가 낄 것인가(본래무일물 하처유진애: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라고 해서 집착을 버리라고 했다. 항간에 유행하는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가 다 이 불교의 깨달음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살다 보니 선생님께서 오래전에 타계하신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뒤늦게 인터넷 검색을 하며 선생님께서 펴낸 시집, 동시집, 수필집 그리고 말년에는 한국어 연구에도 몰두하시고 국어연구 자료집도 발간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선생님을 기리는  추모 시낭송회 소식도 나에게는 새로웠다.

선생님은 82세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비문’을 다시 읽으며 문득 선생님께서 떠나신 후 묘소에 비문이 세워졌는지 궁금해졌다. 선생님의 “구름이나 한 송이 그리면 족합니다”라는 시구가 자꾸만 뇌리에서 맴돌았다. 문학 작품의 내용과 현실을 연결해 보는 내 속물근성의 발로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살 만큼 살았다는 듯, 팔십이 되는 것은 지루하다는 듯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시인”이라고 선생님을 추모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선생님은 비석이나 비문에 전연 개의치 않으셨으리라는 느낌이 왔다. “야, 인마, 구름에 대한 미련은 버려!” 빙긋이 미소 짓는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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