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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A를 만나다

얼마 전 샌디에이고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A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학위를 마치자마자 중부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가 혈혈단신 서부로 향한 지 수년이 흘렀고, 지금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연주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조성진이나 선우예권처럼 세계 유수의 대회에서 입상했던 경력도 없고, 그렇다고 랑랑이나 유자 왕처럼 개성 넘치는 끼와 천재성으로 세계적인 지휘자의 눈에 발탁되어 천금 같은 기회를 단박에 얻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보통은 안정된 삶을 위해 대학 교수직을 찾는 것이 일반적인데, A는 이도 저도 아닌 셈이었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였던 사를르 뒤뜨와에게 전격 발탁된 유자 왕은 이후 세계적 명성의 연주단체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클라우디오 아바도, 로린 마젤 같은 지휘자들도 10대 어린 중국 소녀의 엄청난 에너지와 기교에 탄복했고 그의 주가는 급상승하게 되었다. 지명도로 보나, 상품성으로 보나 이제 그는 피아노의 대세이다.

피아노의 여제로 불리는 아르게리히의 보스턴 콘서트가 취소 위기에 놓여있을 때 그를 대신하여 무대에 올라 독보적 기량을 보인 것도 유자 왕이었다. 이 사건 이후 도이치 그라모폰은 음반을 제안해 대박을 터뜨렸고, 그녀의 신들린듯한 연주와 음반에 세계는 열광하게 되었다. 2011년 여름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야외공연에 등장한 유자 왕은 몸에 달라붙는 미니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 등장해 다시 화제를 일으켰다. 미 주류 언론에 소개된 한 장의 사진으로 그는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최근 A는 미국 내 연주단체들과 매니지먼트가 한 자리에 만나는 콘퍼런스에 참여해 본인 이름으로 부스를 만들어 자기 연주를 세일즈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런데 부스 참가 비용이 자그마치 7000달러. 스타군단을 거느리는 주요 매니지먼트나 거대 연주단체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다르겠지만, 대부분 중소 규모의 공연장이나 연주단체들은 이 콘퍼런스에서 연주자들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망설임 끝에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열혈 팬이 된 서포터들의 후원과 관심 때문이었고, 실제로 네트워크를 늘려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A는 대중에게 이름이 많이 알려진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독특한 프로그래밍과 개성 있는 진행 방식으로 콘서트를 연다. 그의 리사이틀은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러나 이외 다른 정보는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는다. 관객은 알쏭달쏭한 부제만 보고 음악회장으로 향한다. A가 건반에 혼을 불어넣기 전에는, 무슨 곡을 몇 곡이나 얼마나 오래 동안 연주할 지 아무것도 모른다. 피아노 옆에는 마이크 스탠드가 놓여 있다. 곡과 곡을 잇는 고리는 연주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채워진다.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는 그의 목소리는 귓속말을 하듯 잔잔하다. 그의 음반은 헤드폰을 통해 들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A의 리사이틀은 개인적이고 감성으로 다가간다.

그는 유튜브 채널을 열어 연주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소식도 전한다. 이제 곧 팟캐스트도 시작한단다. 음악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는 귀로만 듣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유자 왕이나 조성진 같은 유명 피아니스트만 활동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창의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일궈가는 A와 같은 연주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제대로 평가 받을 기회가 생긴다면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수많은 젊은 음악가들은 그들의 경주에 최선을 다한다. 10년을 내다본다는 A의 열정에 응원을 보낸다.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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