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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앤 테크놀로지] 네온사인과 현대미술

2017년 서울 사진 축제에 전시된 조숙진의 '서울 십자가, 2017; 3 에디션' 72점 사진 설치 장면(서울시립미술관 주최, 북서울 미술관 전시). 가로 7m 세로 2.4m ⓒSook Jin Jo

2017년 서울 사진 축제에 전시된 조숙진의 '서울 십자가, 2017; 3 에디션' 72점 사진 설치 장면(서울시립미술관 주최, 북서울 미술관 전시). 가로 7m 세로 2.4m ⓒSook Jin Jo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는 밤이나 낮이나 번쩍이는 전광판이 현란한 동영상을 쉴 새 없이 뿜어내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42가 브로드웨이 주변은 빨강이나 노랑 위주의 네온 간판을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댄 플라빈(1933~1996), 브루스 나우만(1941~), 제니 홀저(1950~) 등의 작가들은 상업적인 네온사인 간판에서 차용한 미술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전구의 기원이 되는 가이슬러관은 19세기 중엽의 독일 과학자 하인리히 가이슬러(HenrichGeissler)가 개발한 것이다. 진공관에 질소, 수소 등의 기체를 낮은 압력으로 넣어 전류를 흐르게 하면 기체들이 밝은색으로 빛난다. 이 원리를 발전시켜 프랑스 과학자 조르쥬 클로드의 연구팀은 1920년대 상업적인 붉은 네온사인을 프랑스와 미국에 공급했다. 그로부터 도시의 유흥가는 현란한 네온사인 간판을 달고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들의 동반자가 되었다. 형광등도 2차대전 이후 가정용 및 업무용 조명으로 많이 보급되었다.

미니멀리즘 작가인 칼 안드레의 형광등 설치작품은 대중에게 선보인 것은 1960년대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45도 기울어진 대각선 형태를 벽에 설치한 1m 80cm의 작품이다. ‘개인적 환각의 대각선 혹은 1963년 5월 25일 대각선(Diagonal of Personal Ecstasy·the Diagonal of May 25, 1963)’은 3개 만들어졌다. 텍사스 포트워스의 모던아트 뮤지엄에 있는 것은 흰색 형광등 작품이고, 뉴욕 디아비콘 미술관에 있는 것은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지헌정 품으로 노란색이다. 작가는 철물점에서 파는 산업용 제품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는데 형광등의 수명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가 미술작품의 영원성이나 기념비성에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플라빈은 빨강·파랑·초록·분홍 등 색채를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형광등은 튜브 안의 가스가 소진되면 교체해야 하는데, 플라빈 생존 당시에는 도안과 제목이 적힌 인증서를 지참하면 새 형광등으로 갈아주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수집가들은 원래의 부품과 형광등의 수명을 손상하지 않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작품에 사용된 형광등이 오리지널인지 대체품인지에 때라 작품의 가치가 엄청나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바니아(Sylvania) 같은 큰 제조사도 몇몇 색깔의 형광등 제작을 중단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플라빈과 동시대의 작가 브루스 나우만은 60년대 후반 네온사인으로 문자를 만들어 관람자가 일련의 추상적인 개념들 되새기도록 유도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품인 ‘진정한 미술가는 신비로운 진실을 밝혀서 세상을 돕는다(The True Artist Helps the World by Revealing Mystic Truths, 1967’은 나선형 빨강 네온 프레임 안에 파랑 네온 글자 튜브가 들어있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영롱한 네온사인은 관람자들에게 어린 시절 추억의 극장이나 캔디 가게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나우만이 만든 단어들은 유년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사색적인 관념들이다. 뉴욕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인간/필요/욕구(Human/Need/Desire, 1983)’는 “Human-Need-Dream-Hope-Desire-Human(인간-필요-꿈-희망-욕망-인간)”의 6개 단어를 네온 블록으로 만들어 움직이는 빛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 실존의 조건일까? 순차적으로 불이 꺼졌다 들어오는 이들 단어를 응시하고 있으면 최면에 걸린 듯 나와 또 타인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 출신의 개념미술 작가인 조숙진의 최근 사진집 ‘서울 십자가(Seoul Cross, 2017)’는 네온사인과 관련해 욕망과 환락이 아닌 초월적 영역, 교회의 지붕을 담고 있다. 70년대 말부터 등장한 교회 지붕 위의 빨간 네온 십자가는 전국의 밤하늘을 밝히며 한국적 네온사인의 특징이 되었다. 낡은 의자나 녹슨 가구 등으로 설치작품을 해왔던 조숙진 작가의 감수성이 72장의 사진 속에서 빨강 네온사인의 유전자를 바꾸어 놓는다. 무심코 지나쳤던 흔하디흔한 빨간 네온사인도 예술 작품 속에서 색다르고 낯설어 보인다.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는 무심한 현대인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꿈과 희망을 묻는 것 같다.


변경희 / 뉴욕주립대 교수·미술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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