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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롤모델과 함께 일했던 건 행운'

헤아려 보니 25년 전이다. 아침에 겨우 눈을 떠 TV를 켜니 성수대교 붕괴 사고 속보로 난리가 나 있었다. 간밤에 건넜던 다리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니 잠이 홀딱 달아났다. 툭 끊어져 버린 다리 상판, 아슬아슬하게 걸린 버스, 구조 헬기와 응급차들…. 믿을 수 없는 사고가 어지럽게 전파를 타는데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는 냉정할 만큼 침착했다. 마치 산산이 조각나 떨어지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을 최대한 상처 없이 집어내 제대로 모양을 맞춰 보여 주려는 듯 차분하게 사고를 전했다.

아나운서를 꿈꾸던 시절, 그 모습이 무척이나 닮고 싶었고 그렇게 그는 나의 롤모델이 됐다. 한국시간 2일 롤모델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이 정치개혁을 주제로 열린 ‘JTBC 신년특집 대토론’을 끝으로 뉴스룸 앵커로서의 6년 4개월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는 토론이 끝나고 “그동안 지켜봐 주신 시청자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작별을 고했다. "'뉴스룸’ 앵커로 있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이 배웠다”고도 짧게 소회했다.

손석희 사장은 1984년 방송을 시작해 뉴스 진행을 비롯해 여러 토론 프로그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2013년 5월 JTBC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뉴스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형식의 ‘뉴스룸’을 만들었다. ‘팩트체크, '앵커브리핑' 등의 코너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뉴스 밖 소식을 전하는 '비하인드 뉴스'도 '뉴스룸'의 자랑거리로 자리 잡았다. 기상 캐스터 없이 앵커가 직접 날씨를 전한 뒤 이어지는 엔딩곡은 딱딱한 뉴스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소통 통로를 만들어 줬다.

JTBC의 슬로건인 '사실, 공정, 균형, 품위'있는 뉴스를 위해 기자들에게는 한 걸음 더 들어간 취재를 요구했고 쉬운 말 전달과 현장을 뛰라는 주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쓰고 보니 한 줄밖에 안 되는데 그날 그날 방송 시간에 맞춰 리포트를 만들어 내야 하는 기자들에게는 진땀 나고 입을 바짝 말리는 주문이다. 허리케인, 토네이도 등 기상 관련 리포트를 쓸 때는 단순히 피해 수준만 전했다간 어김없이 다시 쓰라는 지시가 떨어져 원인을 알아내느라 온갖 자료를 뒤져야 했다. 현장 전달을 위해 스탠딩 장소를 찾느라 밤거리를 헤맨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그가 앵커로 있었던 6년 4개월 동안 '뉴스룸'은 크게 성장했다.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사태 등의 이슈를 이끌었고 2016년 국정농단 사건 관련 태블릿PC 보도에서는 시청률 10%를 넘겼다. 미디어 어워드에서는 공정성 부문에서 JTBC가 3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인생의 롤모델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건 기자에겐 행운이었다. 진땀 나고 입을 말리는 지시 뒤에는 따뜻한 격려와 날카로운 평가를 선물로 받았고 이런 경험은 모두 소중한 자산이 됐다.

2019년 12월31일 방송된 '뉴스룸'의 947회째 마지막 앵커브리핑에서 그는 끊임없는 움직임에 대해 말했다. 노벨문학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 중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문구를 인용해 "삶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안정한 것이니 흔들리고, 방황하며 실패할지라도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멈추지 않는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란다"며 아일랜드 켈트족의 기도문을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그간의 앵커브리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설명과 함께 이어진 기도문으로 독자들에게는 새해 인사, 나의 롤모델에게는 감사 인사를 전한다.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길…."


부소현 JTBC LA특파원·부장 bue.sohyu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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