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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포커페이스'…속임수도 수 싸움도 '갑'

AI와 포커 맞붙은 김동규씨
"정신·체력적으로 지쳐서 졌다"
"난 55% 승률…일곱자리 수입"
"인생의 행운은 주변의 내 사람"

"아쉽다. 이길 수 있었는데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

마치 바둑 기사들처럼 그도 승부가 끝나면 복기를 한다고 했다. AI 리브라투스와 포커 대결에서 아쉽게 패한 한인 2세 프로 포커플레이어 김동규(28)씨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나왔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2009년 워싱턴주 벨뷰 칼리지를 중퇴하고 포커판에 뛰어든 8년차 프로 포커플레이어다. 지난 2015년 일명 '일대일 맞포커'로 알려진 헤드업 방식의 텍사스 홀덤 포커 토너먼트인 '스쿱(Scoop)' 대회에서 33명의 전세계 도박사들을 누르고 우승하면서 포커계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같은 해 리브라투스의 전 AI 모델인 클라우디코와의 승부에서도 이겨 유명세도 얻었다. 본지와 전화 인터뷰는 대회 마지막 날인 30일 피츠버그 현지시간으로 자정이 넘은 때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 일답.

-대회를 마친 소감은.



"아쉽지만 기쁘다. 역사적인 순간에 초청받아 참가할 수 있어 영광이다."

-AI와 2차례 경기에 연속 초청받았다.

"8년간 포커 프로선수로 활동했다. 5년 전부터 주로 헤드업(일대일) 승부를 해왔다. 내가 맞대결에 능하다는 점과 2년 전 클라우디코(리브라투스 직전 AI 모델)와 승부에서 이겼기 때문에 다시 초청한 것 같다."

-패배를 예상했나.

"클라우디코에 이겼던터라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AI 개발자인 투머스 샌드홈 교수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상당히 성취욕이 강한 사람이어서 그가 만든 AI에도 그 영향이 미쳤을 거라 판단했다. 걱정대로 대회 중반이 지나면서 이기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AI를 과소평가했다."

-AI와 첫날 대결은 어땠나.

"기자들이 많이 왔고 기술적인 문제들도 수정해야 했기 때문에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AI가 작은 실수들을 하긴 했지만 예측하기 어려웠다."

-첫날 AI에 놀랐던 것은.

"AI가 블러핑(Bluffing.패를 속이는 것)을 많이 해서 상대하기 어려웠다. 사람과의 일대일 승부에서는 상대가 블러핑을 할 때 감정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데 AI는 불가능하다. 블러핑인지 정말 좋은 패를 가졌는 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승기를 놓친 순간은.

"첫 이틀은 졌지만 그 이후 15일 동안 선수 4명 중 나만 AI를 이겼다. 대회 종료 이틀 전부터 지기 시작했다. 지쳤던 것 같다."

-패인을 분석한다면.

"대회는 20일간 계속된 마라톤 대결이었다. 매일 평균 11시간씩 수만 번 승부를 해야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무엇보다 승부를 복기할 시간이 없었다. 보통 나는 1시간 경기 분량을 4시간 동안 분석한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가장 아쉽다."

-리브라투스를 이전 모델과 비교한다면.

"클라우디코는 안정적 승부를 했지만 리브라투스는 파이터(싸움꾼)였다. 상당히 공격적으로 베팅했다. 또 인상적인 점은 스몰팟(판돈이 작은 판)에서 베팅하는데 더 오래 걸렸다. 승부의 70%가 스몰팟이다. 블러핑에도 확률적인 계산에도 능했다는 뜻이다."

-AI가 한 블러핑의 예는.

"판돈 100달러가 걸린 판에서 1000달러를 거는 식이다. 상대 패를 모르는 상황에서 고작 100달러 따기 위해 10배를 거는 것은 무모한데 그 수 싸움에 AI는 능했다."

-AI의 강점과 약점은.

"최고 강점은 균형감각이다. AI가 좋은 패를 들었을 거라고 인간에게 믿게 만드는 플레이를 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좋은 패에서 큰 돈을 걸고 나쁜 패에서 카드를 접는다. AI는 그런 성향이 없었다. 다만 인간의 실수를 기다리는 듯한 AI 플레이는 사람이 파고들 수 있는 약점이다."

-올해 대회의 의미는.

"우린 졌지만 인간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물론 AI가 인간을 완전히 이기는 것은 시간 문제겠지만 포커에서는 아직 인간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AI와 싸움에 2년 연속 참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지난해 이세돌과 AI의 승부를 아는가.

"마침 한국에 있을 때여서 잘 알고 있다. 바둑은 가로세로 19점씩 361점의 승부라고 들었다. 이세돌의 1승은 인상적이었다. 뉴스를 들으면서 '나도 또 한번 AI와 대결을 하겠구나'하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

-LA 출신이라고 하던데.

"아니다. 한 주류 언론에서 처음 그렇게 보도해 기정사실로 됐다. 아마도 LA에 한인이 제일 많으니까 짐작해서 쓴 것 같다.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엔 집안 사정 때문에 시애틀과 하와이를 왔다갔다 했다. 대학 진학 후에 시애틀에 정착했고 프로가 된 뒤 전세계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매년 4~5개월은 한국에서 산다."

-프로 갬블러가 된 계기는.

"1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무엇이든지 혼자 해결하는 게 익숙했다. 18살 되면서부터는 혼자 살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대학 진학 후 피자 배달 자동차 세일즈 등등 10여 가지 직장을 전전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게 힘들어 한 학기씩 휴학을 했는데 그때마다 온라인 포커를 조금씩 했다. 확률과 수 싸움에 내가 재능이 있는 것을 알게됐고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결심했다."

-부모님 반대는 없었나.

"전형적인 한국 어른들이다 왜 없었겠나. 첫 1~2년간 반대하셨지만 아들이 행복해하니 지금은 많이 후원해주신다. 아마 돈을 잘 벌어서 그런 것 같다.(웃음)"

-지난해 수입은 얼마나 되나.

"정확한 액수는 말하기 어렵다. 다만 일곱자리(백만달러 단위)는 된다."

-승률은 어느 정도인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내 경기를 항상 분석한다. 지금까지 55%다."

-55%면 절반 조금 넘는 정도다.

"아마 다른 프로 갬블러들에게 물어보면 빼어난 성적이라고 할 것이다. 프로 갬블러 평균 승률이 51%다. 4%면 큰 차이다."

-비결은.

"공부하고 절제한다. 항상 패인을 분석한다. 도박사라고 하면 보통 게으르고 나태하다고들 알고들 있는데 난 그렇지 않다. 또 책임있는 갬블러가 되려고 노력한다. 젊은 나이에 돈을 많이 벌었지만 낭비하지 않는다."

-따는 사람과 잃는 사람의 차이는.

"도박은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어야 한다. 땄다고 너무 흥분하거나 잃었다고 너무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확률이기 때문이다. 도박 종류마다 통계학적 개념인 '기댓값(expected value)'이라는 것이 있다. 룰렛을 예로 들면 기댓값은 94.7%다. 평균적으로 100달러를 걸었을 때 내게 돌아오는 돈은 94.70달러라는 뜻이다. 하면 할수록 확률적으로 질게 뻔한 게임이니 100달러보다 더 땄다면 그때가 그만 둘 때다."

-다음 경기는.

"며칠 뒤 마카오에서 대회가 있다. 곧바로 상하이로 날아가 한 도박사에게 개인 교습을 해줘야 한다. 그 후엔 한국에 들러 친구 친지들을 만나려고 한다."

-최종 목표는.

"AI의 등장으로 아마도 프로 갬블러가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벤처 투자와 사업 계획을 구상중이다. 분명한 건 9~5(9시 출근 5시 퇴근) 일은 하지 않는다. 삶을 재미있게 즐기고 싶다."

-인생과 도박은 닮았다고 생각하나.

"삶 역시 행운 근처에서 맴돈다고 생각한다. 내게 인생 최대의 행운은 사람이다. 가족 친구 멘토 등등 좋은 사람들이 많다. 행운은 주어지는 기회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라고 생각한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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