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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한인타운 분리안 투표 '그 후'

"아빠, 플리스!"

키우던 13살 된 애견 '말리'의 재롱 횟수가 줄어들고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둘째 아이가 친구 집에서 태어난 5마리의 새끼 고양이 중 한 마리를 데려오고 싶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애완동물에 대한 긍휼한 마음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바쁜 일상에 한 식구를 추가할 여력이 우리에게 있겠냐는 반문으로 연일 방어전을 펼쳤다. 딸 아이는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일을 도맡아 하겠다며 '플리스'를 연발해댔다. 이미 노견 한마리도 벅찬 현실이었지만 '정서 함양과 책임감 증진'이라는 미명 아래 결국 오케이를 하고 말았다.

이렇게 한식구가 된 '코코'를 위해 쇼핑이 시작됐고, 그 주 주말엔 이 녀석이 전입해 왔다. 코코는 그야말로 '하룻 강아지' 고양이였다. 우리 식구는 집에 있는 '말리'를 '범'에 비유하며 노골적으로 연령에 따른 위계질서를 설복했지만, 하룻 고양이 코코가 이를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다. '냥이들' 특유의 거친 숨소리를 내며 대항하는가 하면 팔을 넓게 벌려 '범'을 위협했다.



그리곤 순진한 '범'의 환영의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코코의 영역전쟁은 이어졌다.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기라도 하면 특유의 복싱을 시작했고, 이내 물러서는 말리의 뒷 모습을 보며 휘파람이라도 부는지 의기양양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기야 하겠느냐며, 처음엔 재미난 싸움 구경이니 지켜보자며 웃어 넘겼지만 도가 지나치다 싶어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안 볼 때만 골라서 폭행이 자행된다.

생각해보면 하룻강아지는 자신이 하루됐는지 모른다. 코코의 공격은 본능적인 것이며 '평화주의자'인 말리의 반응은 학습된 것이어서 고양이의 본능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고양이가 본능대로 주인의 훈육 속에서도 '범'에 대한 경계를 통해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동물의 세계에선 자연스러운 것이다.

동물 이야기가 길어졌다.

지난 19일 시행됐던 방글라데시 주민의회 분리안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는 한인타운엔 우리 집 코코의 '총경계령'과 비슷하지 않았나 해서다. '어디 감히 우리를...'이라는 마음들이 한인들을 이심전심 투표장으로 몰려나가게 했고, 엄청난 표 차이는 의기양양한 승전의 훈장이 됐다. 하지만 이게 과연 승리일까.

민주 사회에서 의사 표시는 반드시 보장받아야할 자유이자 권리이지만 결론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왠지 찜찜하다. 방글라데시계 주민들은 하룻 강아지도 아니고 굴러온 돌도 아니다. 커뮤니티를 키우고 그들 스스로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이민자 본능에 충실했던 것 뿐이다.

그들이 누군가의 분노를 불러오거나 상처를 줄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더군다나 같은 이민자들끼리 영역다툼을 벌이는 것도 우스운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도 나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승리감을 충분히 만끽했다면 그들을 포용하고 함께 공존할 방안을 찾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 로라 전 LA한인회장이 직접 방글라데시 주민들이 모이는 곳에 찾아가 손을 내미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들과 정기적으로 커뮤니티 발전 방향도 논의하고 시 의회 압박에 공조하는 것도 좋겠다. 무시하기 보다는 더 설명하고 토론하는 것이 성숙된 이웃의 자세일 것이다. 매년 열리는 우리의 한인축제에 그들도 와서 부스를 차리고, 그들의 문화도 엿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룻 고양이 코코의 복싱은 적대감의 표시가 아니라 나름의 중요한 생존 방식이다. 우리 한인사회가 30~40년 전에 그랬듯이 말이다.


최인성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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