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대북 식량 지원과 비핵화
문 대통령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식량을 포함한 대북 인도적 지원뿐이다. 지난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는 "적절한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식량 등 대북 인도적 지원에 "오케이" 사인을 줬기 때문이다. 한·미가 앞으로 워킹그룹 협의를 통해 세부안을 만들기에 따라선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를 끌어낼 여지가 생겼다.
우리 정부의 역대 대북 지원 중 가장 큰 부분이 쌀 지원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인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쌀을 40만~50만톤씩을 북으로 실어 보냈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한 2006년 한 해만 쌀 지원을 중단했다. 쌀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 간 차관으로 주는 직접 지원하는 형식을 택했고, 국제시세에 따라 1000억~1792억원(2005년)에 달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을 대북정책으로 표방한 데 북한이 "남북 간에 비핵화를 앞세웠다"며 대화를 거부하며 중단됐다. 이후 2010년 수해 긴급 구호 명목으로 5000톤을 보낸 게 정부 차원에서 보낸 마지막 쌀이 됐다. 유럽 등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도 만성적인 대북 식량 지원 피로감과 2016년 이후 핵미사일 시험으로 지원 규모를 대폭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김성 북한 유엔대표부 대사가 하노이 정상회담 직전 유엔에 공식적으로 긴급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 자구 노력을 해도 올해 148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호소였다. 시기적으로도 정부로선 검토해볼 만한 셈이다.
쌀 지원 재개의 기본 전제는 북한이 과거처럼 당연한 선물로 여기게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국민 세금으로 쌀을 보내기 위해선 '김 위원장이 비핵화 최종 단계와 로드맵에 합의해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김 위원장 스스로 "전략적 결단을 했다"고 밝힌 만큼 로드맵에 합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자신의 '영변-제재 완화' 스몰 딜을 타결할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올 하반기부터 미 대선전이 본격화돼 협상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정효식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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