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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청명한 가을 하늘은 높아만 가는데 지상은 혼탁한 황진으로 난분분하다. 하늘의 구름마차마저 앞으로 가는데 대한민국은 진영논리에 발목이 잡혀 광화문과 서초동을 맴돌았다. 저주와 혐오, 비방과 조롱, 타락한 문자폭탄, 혹세무민의 거짓으로 아수라장이 된 광장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나라는 절단 나도 산하는 그대로 이구나. 성은 봄을 맞아 초목이 푸르구나)로 시작하는 시 '춘망(春望)'이 새삼스럽다. 당나라 현종 때, 수도 장안이 안록산의 난으로 점령당하고 감옥살이를 하던 두보가 지은 시다.

조국사태로 쪼개진 우리 사회를 보는 보통사람의 심정 같다. 학연·혈연·지연의 망령을 능가하는 '진영'이라는 새로운 점령군이 강토를 초토화하며 촌음이 급한 우리 사회의 장래를 망치고 있다. 이 광기의 난장판 뒤에도 봄은 또 오겠지만 집권 세력의 평등·공정·정의의 수준에 실망한 봄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뉘라서 장담할 수 있겠는가.

고향에서 늙어가는 친구들이 광화문집회 참석의 설명과 사진을 보내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법을 지키며 사람들에게 심려를 끼치지 않고 가장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으로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해온 이들이 생업을 팽개치고 시간, 비용, 정성을 들여 서울로 행진한 것이다.



그러니 친구들을 움직인 건 진영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탱해온 상식과 정서일 것이다. 법과 관계없이 상식에 따른 당연한 '기대'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에 대한 대응인 것이다.

도둑에게는 나쁜 놈이라고 소리치고, 착한 일을 한 의인에게는 칭송을 던지는 상식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보며 화가 난 것이다.

더욱이 진보와 양심의 담론과 지도의 역할을 자임해온 인사들이 벌이는 말과 행동에 대한 반감의 영향도 크다. 이들이 펼치는 이현령비현령의 재주와 억지를 목격하는 것은 개인적·사회적인 각성이면서 아픔의 과정이기도 했다. 열 손가락이 모자라는 혐의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다며 옹호하는 건 우리가 살아온 공동체의 양식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것이다.

'문프'가 선택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반민주적 사고, 조력자와 함께 연구실에서 컴퓨터를 반출한 행위를 '증거인멸이 아니라 (검찰이 증거를 조작할까 봐) 증거보존의 행위'라는 궤변, 이번 사태는 양식의 문제라고 한 진보 인사에 대한 매도와 독설, 사실을 증언한 사람에 대한 뒷조사, 반대 여론에 대한 무시와 비하, 이견을 억누르는 여당, 검찰과 법원과 비판 언론을 적폐집단으로 몰아가기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패거리 패권주의의 구태와 다를 바 없다. 이런 공감의식의 결여가 고향친구들을 발길을 광화문으로 내딛게 했으리라.

인간 행위의 3분의 1 이상이 상대를 속이는 거짓이고, 인간은 하루에 평균 2건 이상의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를 떠올려 본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3월 2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참회 전례에서 '뉘우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반 사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해성사를 한 것인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조절되는 저울로 국민의 상식과 정서를 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조국사태는 진보와 보수의 진영을 넘어 상식과 기대의 위반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김정기 /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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