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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지면서 이기는 길

창을 열면 맨해튼의 원월드트레이드센터가 지척에 보이고 그 아래 허드슨 강 위로는 이른 아침부터 출퇴근용 페리가 가을 강물을 가르며 연락부절이다.

10월 한달을 뉴저지의 딸네 집에서 보내고 있다. 1년 내내 그날이 그날 같은 LA를 떠나 제대로 된 가을을 만나보고 싶어서였지만 그보다는 잠시라도 뉴스의 홍수로부터 비켜나 있으며 그것을 객관화시켜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도 가을은 연착이다. 다른 해 10월 중순 이맘때면 영화 'Autumn in New York'을 기억나게 만드는 센트럴 파크나 뉴욕 업스테이트가 온통 빨갛고 노란 색깔로 뒤덮여 있을 때인데 올해는 그렇지가 않았다. 성급한 마음에 뉴햄프셔의 화이트 마운틴을 지나 캐나다의 몬트리올과 퀘벡까지 올라가 가을을 마중하고 왔다. 오가는 길에서 만난 좋은 동행이 여행의 정취를 더해줬다.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겨울나기 준비로 나뭇잎을 떨어뜨려 버리거나 단단한 껍질로 몸을 보호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찬탄하는 단풍이 만들어지는 이치도 실은 나무들이 건조한 계절에 살아남기 위한 월동 수단의 하나라니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묘한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약하고 실없어 보이지만 미물들마저 모두가 제 실속을 차리고 있는데 항차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실속없는 짓을 벌일 때가 많다는 것은 딱한 노릇이다.

모두가 무엇인가 이기기 위해서 살지, 지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 무리하게 이기는 것만 앞세우다가 마침내 처절하게 패배한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논어에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했고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두어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도 있다. 지난 몇달 동안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국 장관 사태만 보아도 그렇다. 정권 타도의 호기로 삼아 끈질기게 몰고가는 것도 야당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고 적극 방어에 나선 여당의 입장도 이해는 갔었다.

그러나 양쪽의 패가 너무 드러나 보였다. '조국 사퇴' 도 '조국 수호'도 명분이 소진돼 버리고 중간지대 국민들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럴 즈음 문재인 대통령이 과감히 조국 장관의 손을 놓아 버렸다. 잘한 일이다. 수도거성이라는 말이 있다. 물이 흐르면 자연히 도랑이 생긴다는 뜻인데 조건이 갖춰지고 민심이 따르면 정권 교체도, 정권 수호도 자연스레 되는 것이지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닐 테다.

북미간 기싸움으로 비핵화 협상이 재개될 듯하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이나 북한이 월드컵 예선의 평양개최를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로 삼지 못하고 속 좁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겉으로 이기는 모습을 너무 앞세우다 보니 그렇다. 이기는 듯하다 패배자가 되기 보다는, 지는 것 같지만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그 길을 가야한다.


김용현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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