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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 4만개 인구는 고작 61만 '룩셈부르크'

90분만 달려도 이웃나라
GDP 세계 2위 '강소국'
중세 유적과 현대의 조화

중세시대 신성로마제국과 헝가리, 보헤미아까지 점령했던 유서깊은 룩셈부르크 가문의 나라. 이후 유럽 열강들의 틈새에서 지난한 역사를 보냈지만 지금은 세계의 최고수준의 부자나라로 등극했다.

중세시대 신성로마제국과 헝가리, 보헤미아까지 점령했던 유서깊은 룩셈부르크 가문의 나라. 이후 유럽 열강들의 틈새에서 지난한 역사를 보냈지만 지금은 세계의 최고수준의 부자나라로 등극했다.

룩셈부르크 관광은 도시의 가운데를 휘감아 흐르는 알제트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알제트강과 파스텔톤의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룩셈부르크 관광은 도시의 가운데를 휘감아 흐르는 알제트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알제트강과 파스텔톤의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작아도 참 작은 나라다. 오른쪽으로 독일, 왼쪽에 벨기에, 아래로는 프랑스와 마주하고 있는 나라, 룩셈부르크다. 벨기에와 그 위쪽의 네덜란드와 통틀어 베네룩스(Benelux) 3국으로 부르던 나라 중의 하나다. 1944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세 나라 정부가 영국에 망명하던 시절 세 나라가 관세동맹을 맺으면서 지어진 이름이다.

국토 면적은 경기도만한 정도에 불과한 2,586㎦에 인구 61만 명이 사는 소국이다. 차로 1시간 30분만 달려도 이웃나라로 넘어갈 정도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의 강점을 살려서 의사결정도, 체질 개선도 빨라 1970년대 이 나라를 먹여살렸던 철강 산업이 무너진 이후, 세계의 '금융 허브'로 재빨리 전환해 글로벌 기업들을 대거 유치했다. 지금은 금융과 철강산업, 포도주, 맥주, 낙농업 등으로 1인당 GDP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지금은 나라 이름으로만 존재하지만 중세 시대 신성로마제국과 헝가리, 보헤미아까지도 점령했었던 유서 깊은 룩셈부르크 가문의 이름이었다. 이후 가문의 혈통이 끊어져 영토가 여기저기로 분할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그 나라의 수도 '룩셈부르크'로 간다. 국가와 수도 이름이 같다. 정확하게는 룩셈부르크시라고 불러야 하지만. 이 도시에만 글로벌 은행과 다국적 기업이 4만 개나 둥지를 틀었다. 룩셈부르크는 그 규모로 인해 한나절 정도면 주요 명소를 얼추 돌아볼 수 있다. 그것도 도보로 가능한 수준이니, 느긋하게 일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대개의 여행자들은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시작한다. 성당 앞에는 헌법광장과 시청사가 있다. 부도심에 있는 키르슈베르크에는 유럽 사법 재판소, 유럽 투자 은행 등의 유럽 연합의 기관, 룩셈부르크 대학 등이 있다. 또한 룩셈부르크 시를 둘러싼 오래된 요새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헌법광장은 룩셈부르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로 광장 오른편으로 구도심과 신도심을 잇는 아치형의 아돌프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1889년 착공하여 1903년 준공된 이 다리는 건설 중 꽤나 애를 먹었는데, 다리의 축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면 고대, 중세 유적이 대량 발굴됐다고 한다. 교각의 간격은 85m로 당시 아치형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다리로 지금은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 중의 하나다. 정갈하면서도 고색창연한 도시의 분위기와 멋지게 어울린다. 이 다리에서 내려보는 룩셈부르크 시내의 모습도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알제트(Alzeette)강이 수만 년 동안 강 양안의 300m 사암절벽 아래를 말발굽처럼 깍아낸 곳 가운데 자리한 마을이 고혼(Gohon)이다. '바닥'이란 뜻의 마을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이미 벼랑이 사방을 감싸고 있는 요새와 같은 마을이었지만, 룩셈부르크 사람들은 14세기부터 사암계곡 위에 성벽를 쌓아 완벽한 방어를 꿈꿨다. 도심 한복판에서 아찔한 낙차를 감상할 수 있는 룩셈부르크의 풍광은 이런 배경 아래 빚어졌다.

고리 모양의 성벽이 에워싼 룩셈부르크의 전경을 즐기기엔 걷기 투어가 제격이다. 알제트강과 페트뤼스강이 후르는 구시가와 신시가지를 걷는 프로그램으로 여행 인포메이션 센터에 신청하면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며 1시간 정도 성벽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이 고리 모양의 성벽은 14~15세기 이 성벽을 완성한 벤첼 2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는데, 고혼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 걷기 프로그램의 이름도 벤첼 워크 투어다. 룩셈부르크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파스텔톤으로 벽을 칠하고 하나같이 회색 지붕을 얹은 고혼의 건물이 알제트강과 어우러진 경치가 탄성을 자아낸다.

도시의 북동부에 자리한 포트 튕겐(Fort Thungen)도 들러볼 만한 곳으로 긴 세월 동안 유럽 열강 틈바구니에서 버텨낸 도시의 지난한 역사를 대변한다. 요새를 이루는 3개의 탑 꼭대기가 '3개의 도토리'처럼 생겼대서 드라이 에헬렌(Drai Eechelen)으로도 불린다. 1867년 1월 1일 독립하여 런던조약에 의해 영세중립의 지위를 얻고 프로이센 군대가 철수하면서 철거됐다가 이후 요새 안팎을 복원해서 지난 2012년 박물관으로 꾸몄다. 600여 점의 유물과 문서 등은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으로 꼽히는 무담(Mudam)도 여행자들에겐 필수 여정 중의 하나다. 드라이 에헬렌 박물관 바로 뒤편에 자리해 옛 요새와 현대건축물이 빚어내는 조화가 절묘하다. 박물관 로비와 연결된 카페와 레스토랑을 겸하는 무담카페에서 즐기는 지역 특산물 요리와 패스트푸드가 여행자의 허기를 채워준다.

헌법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성모2 마리아를 뜻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1613년에 준공된 후기 고딕 양식의 이 대성당은 룩셈부르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세 개의 첨탑이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그랜드 두칼 궁전을 만난다. 대공의 궁전을 뜻하는 이곳은 궁왕인 앙리 대공의 영빈관겸 집무 공간이다. 공작의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으로 룩셈부르크의 정식 국호도 룩셈부르크 대공국이다. 대공이 자리를 비울 때는 근위병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치안이 좋은 나라 중의 하나다. 실질적인 정부수반인 총리도 시민들과 만날 때는 경호원 한 명만을 대동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기욤광장, 보크 포대, 국립역사예술 박물관도 놓칠 수 없는 명소들이다.

사진=룩셈부르크 관광청


백종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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