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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실낱 같은 희망으로

이기희
이기희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4/30 23:00

터널의 끝이 안 보이면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열심히 달려가도 캄캄하고 길이 좁아 끝이 안 보이고 뒤돌아 설 수 조차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선 어찌해야 하나요. 사방을 둘러봐도 빠져나갈 틈새 보이지 않고 사면초가의 극한 상황이면 어떻게 버티며 살아가야 합니까. 실오라기 같은 희망의 끈 놓지 않겠다고 머리 싸매고 다짐해도 사는 것이 바람 앞에 등불 같이 흔들립니다.

봄날 아침입니다. 모진 계절의 악몽에서 깨어나 그리움과 때늦은 후회는 벼갯닛에 묻고 절망을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날 시간입니다. 잦은 봄비가 대지를 눈물로 적실 때까지 실낱 같은 희망 붙잡고 떡잎 새로 키울 준비를 하세요.

밤새 뒷마당에서 허공을 떠돌며 어둠을 밝히던 오색 찬연한 꽃잎들이 낙화 되어 흩어집니다. 꽃잎들은 서로 살을 부비며 작별을 아쉬워합니다. 창틀에 쌓인 잎새들은 쓸어버리지 말고 그냥 남겨두세요. 당분간 헤어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봄 햇살 어루만질 얼마간의 모래시계가 남았습니다. 머리 조아려 고사(叩謝) 지내듯 그대 모습 아지랑이로 사라질 때까지 하얀 물망초 한다발 흔들어 주세요.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늙은 소나무 아래서/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판다(중략)/ 벚꽃 무더기를 비집으며/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뜨고 /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이 딸이/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파는/ 삶의 마지막 고살’
-신경림의 ‘봄날’ 중에서

봄 색깔이 찬란해서 당신을 죽였지요. 햇살이 눈부셔 그대 사랑을 고살(故殺) 했습니다. 일부러 죽였습니다. 거목 같은 당신을 담기에는 제 사랑은 풀잎처럼 초라했습니다. 불덩이 같은 그 짜릿하고 숨 막히는 청춘의 말들을 어찌 작은 우주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며 사랑할 수 없던 절망과 배신을 용서하세요.

'고살풀이 춤’은 죽은 사람의 원혼을 푸는 춤입니다. 인간의 12진살을 푸는 ‘고풀이 춤’은 ‘고(매듭)’를 묶은 천을 풀며 인생살이의 ‘생로병사 희로애락’에 얽히고 설킨 액고 액난을 다스리며 춤을 춥니다. 당신이 못 견디게 그리우면 별이 총총 돋는 밤 살풀이 춤을 춥니다. 이승에서 묶은 생의 동아줄을 자르기 위해 시름없이 부대끼는 생의 무게를 덜기 위해 살(煞)을 풀며 살풀이 춤을 춥니다.

꽃이 필 때면 그리움으로 돌아오는 당신은 상사화(相思花)였나요. 죽은 가지에 다시 피는 소복 입은 백목련이였나요. 상사화는 꽃이 필 때 잎이 없고 잎이 자랄 때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어머님 창가에 피는 백목련도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입이 파릇파릇 돋아납니다. 잎 없이 피는 꽃들은 애잔합니다. 꽃잎 송별이 계절 따라 어긋나도 캄캄한 터널 어둔 세상에서 당신은 한오라기 빛을 주셨습니다.

‘산은 오를수록 높고 물은 건널수록 깊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사는 게 힘들고 험난해져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다시 희망을 노래합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TS 엘리엇의 잔인한 4월을 참고 버틴 것처럼 실낱 같은 희망의 오월 맞으시길 바랍니다..

행복과 불행은 셋이서 함께 옵니다. 가난해도 넉넉하게, 불행해도 행복한 미소로, 지치고 힘들어도 서로 부등켜 안고, 호랑이에 잡혀가도 정신줄 놓지 말고, 터널의 끝에서도 떨지 말고 용기 잃지 말고, 사랑으로 영혼을 밝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당신 곁으로 수채화로 작은 점 찍은 엽서 한장 띄웁니다. (윈드화랑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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