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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peterjung49@naver.com
LNG Specialist

"Buen Camino!"는 순례길에서 마주치는 순례자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인사말이다. 지난 4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왔다. 프랑스 길 총 800km 중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118km 구간 만을 5일 동안 순례를 했다. 전 구간을 30일 이상 순례한 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한 영적 도전이었기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의 벅찬 감정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은퇴 후 지난 3년 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나름 즐겁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황창연 신부님의 "자신 껴안기"라는 강연에서 들었던 3가지 화두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How to live?',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How to die?' 였는데 내가 과연 그에 걸맞게 살았는지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시인 두보의 시문에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 七十 古來稀'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 남자의 평균 수명이 80세에 근접했으니 나도 그때까지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아버님이 85세에 돌아가셨으니 조금 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내 나이 칠순이 되고, 앞으로의 여생은 고작해야 10년 정도, 길어야 15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지고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흔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삶의 성찰을 통해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이라고 한다. 중세 이후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가톨릭 신자들만이 이 길을 찾았지만, 지금은 종교와 관계없이 매년 150여 개국에서 온 60,000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저마다의 바램을 안고 이 길을 걷는다. 나도 순례 하는 내내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얻어 갈 것인지? 지나온 70 평생을 되돌아보면서 진정한 나를 만나고자 성찰하고 묵상하면서 기도 리스트의 소원과 함께 걷고 또 걸었다.

스페인 북서부 갈라시아 지방의 아름다운 산악지대를 오르내리는 순례길을 하루 평균 24km씩 걸었다. 드넓은 초원과 아름다운 목장 지역 및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을 지나는 고즈넉한 길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때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도로변을 따라서 자동차와 나란히 걸어야 했다. 복잡한 도심 구간을 지날 때는 분심이 들어서 어깨에 짊어진 9kg 배낭 무게가 가뜩이나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짓눌렀다.

몸과 마음이 지쳐 한계를 느낄 때면 당연히 주님을 찾게 되고, 자주 뒤돌아보면서 지나온 삶에 대한 회개와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일 중독인 남편을 잘 내조해 준 아내가 고맙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바르게 커 준 두 아들, 며느리와 손자 손녀,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잘 이끌어 준 선후배와 크리스천 친구들도 새삼 고마웠다.

두 번째 날 순례길에서 '내가 왜 이렇게 서두르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아침 9시쯤 느긋하게 순례를 시작하는데,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7시 반에 출발을 한 후 부지런히 걸었다. 다른 순례자가 앞서기라도 하면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힘도 많이 들고 금방 지쳤다. 은퇴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경쟁의 조급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Slow Life'다. 그래야 내게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가족들도 편할 것이다. 다음날부터 나도 아침 9시에 출발을 했다. 1시간에 3km 정도를 걸을 수 있으니 24km를 걷는데는 8시간 정도가 걸려서 오후 5시경에 목적지인 알베르게(Albergue)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을 먹고도 여유롭게 다음 날을 준비할 수가 있었다.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광장에 드러누워 기념사진을 찍고 순례자들과 기쁨을 나눈 후 안으로 들어가서 야고보 성인상을 뒤에서 껴안고 입맞춤 의식도 했다. 12시에 순례자 미사에 참례하여 항상 낮은 자세로 교만하지 않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크리스천이 되겠다고 눈물로 다짐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이태리의 로마와 함께 가톨릭의 3대 성지이다. 이번 순례길에서 10여 국에서 온 여러 순례객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삶을 통해서 내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다.

특히 나와 동년배인 아일랜드 여성 순례자는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우리는 Special Person이며 이곳에서 맛본 특별한 경험들이 분명히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줄 것이라는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오늘도 사소한 것 때문에 아내와 부딪치고 후회를 했는데 사랑으로 감싸는 배려가 부족했다. 내 아내에게조차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사랑은 공염불이다. 열 마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 후 몸무게가 2 kg이나 빠졌다. 그리고 지금은 회복 중이지만 양쪽 엄지발톱을 비롯해서 여러 발톱이 시커멓게 죽었고, 발바닥에 생긴 물집 때문에 산을 내려올 때는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오로지 나 혼자만의 고독과 침묵 속에서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깊은 체험을 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함께 걷지만 혼자이고, 혼자 걷지만 누군가와 함께다"라는 어느 순례자의 고백에 공감한다. 앞으로의 여생은 황창연 신부님의 "자신 껴안기" 3가지 화두를 새기면서 바른 신앙인 베드로로 살고자 한다. 비록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번 순례의 체험도 점점 희미해지기는 하겠지만 내 삶의 어딘가에 물감처럼 배어 나에게 활력을 줄 것으로 믿는다. " Buen Camino!"

정만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가작
peterjung49@naver.com
LNG Speci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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