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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문학칼럼: “이웃사촌”

바람 따라 밤새 내 침실을 기웃거리던 백일홍 나무Red Crape Myrtle와 눈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한다. 수줍은 처녀의 볼처럼 빨갛게 물든 꽃들이 무척 아름답다.
새로 이사 온 단지에는 110여 가구가 모여 산다. 지은 지 50년이 넘었지만, 주변 환경이 멋있고 넓은 편이다. 커다란 소나무와 도토리나무가 예쁜 정원을 이루고, 가늘고 늘씬한 가지 끝에 크레이프 같은 꽃들이 한창인 백일홍 나무, 일명 배롱나무가 사이사이에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곳이다. 나 같은 은퇴자가 Minimal Life를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서재 양쪽 창문에서도 마주하는 꽃들과 자유롭게 뛰노는 다람쥐와 새들을 보는 낙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미국으로 온 후 아내는 타운하우스에 사는 것을 선호했다. 한국에 있을 때 전원주택에 살면서 잔디를 깎거나 집을 관리하면서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15년 동안 개인 주택은 보안이 취약한 단점이 있어 보여 타운하우스에 살았고, 이곳으로 오기 직전에는 지은 지 10년 된 Patio House에 살았다. 한 울타리 안에 6가구가 두 줄로 마주 보며 있고, 앞쪽에는 Security Gate가 설치된 주거 형태로 개인 주택과 타운하우스의 중간 형태이지만, 편의성을 우선하기 때문에 손바닥만 한 정원 외에는 온통 콘크리트 바닥이어서 정서적으로 메마른 곳이었다.

오늘은 옆집 아주머니가 키위를 들고 찾아오셨다.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하시며 호박죽을 갖다 주셔서 맛있게 먹은 게 엊그제인데 또 가져오셨다.
이사 와서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새벽, 급하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선잠을 깼다. 현관문을 여니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도움을 청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다 가방과 핸드폰을 두고 잠깐 내렸는데 차 문이 닫혔다고 했다.



우선 전화기를 빌려드려 딸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황망 중에 번호가 정확한지도 모르겠고, 나부터라도 이른 아침에 온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는 것이 상식이라 발만 동동 구르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궁여지책으로 철사를 구해서 차 문을 열어 보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생각 끝에 내 차는 아니지만 내가 갖고 있던 AAA Road & Battery Service의 도움을 받아 문을 열어드렸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첫 번째 이웃사촌은 마실 차 온 세 번째 만남에서 같은 한국 동포로서 그동안 쌓였던 이민생활의 동병상련同病相憐 보따리를 풀어내느라 아내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에 오게 된 사연부터 시작했는데, 여자들끼리 얘기하는 데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뭐 하고 있느냐고 아내가 핀잔을 줄 때까지 버티고 있다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재로 올라왔다. 다음 얘기가 못내 궁금했지만, 아내에게도 오랜만에 친구처럼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생겨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웃사촌과는 이렇게 만났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은퇴 생활의 여유를 갖고자 옮겨온 지 얼마 안 지난 새벽녘에 막내아들이 쓰는 2층 화장실에서 누수가 발생해 1층 부엌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급히 보수를 마쳤지만 물에 젖은 목재 천정을 건조해 습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천장 속에서 곰팡이Mold가 발생해서 가족의 건강을 해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급히 전문 업체에 의뢰해서 선풍기와 온풍기 여러 대를 설치하고 48시간 이상 건조했는데, 소음이 엄청나서 양해를 구하려고 옆집에 가보니 반갑게도 한국 동포가 살고 있어서 원만히 해결됐다. 젊은 부부가 Elementary School에 다니는 남자아이와 살고 있는데, 자주 마주치며 눈인사를 나누고 있다. 어느 날 차고Garage 문 닫는 것을 잊고 자정까지 활짝 열어 두었는데, 옆집에서 알려주어 문을 닫고 안전하게 잘 수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요즘 들어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여러모로 와닿는다. 조그만 친절에도 감사할 줄 알고, 서로를 배려해 주는 이웃이 있어서 마음이 흐뭇하다.

이곳 타운하우스 단지는 우리 가족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04년도에 주재원으로 처음 휴스턴에 왔을 때 지금 사는 집에서 세 집 건너에 살았기 때문이다. 비록 1년간 렌트를 해서 살았고,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였지만 바로 앞에 방문자의 차를 20대 가까이 주차할 수 있는 넉넉한 주차장도 있고 수영장도 가까이 있어 편했고 좋은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나에게 집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 여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인 의依, 식食, 주住 중 하나로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편히 쉬면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포근한 곳이다. 앞으로의 여생은 새로 만난 이웃사촌들과도 교류하며 중용中庸의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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