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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280>나폴레옹4. 몰락

1812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은 러시아 접경을 넘어서부터 무인지경를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무서운 속도로 진격했다. 러시아군은 싸움을 회피하고 후퇴만 거듭했다.

1810년 1월 나폴레옹은 14년이나 같이 살았던 조세핀과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의 딸인 마리 루이즈와 결혼했고 루이즈는 다음해 나폴레옹 2세를 낳게 된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빠른 운송 수단이 없을 때인 데다 속도전을 중시하는 나폴레옹의 전술상 프랑스군은 보급품의 많은 부분을 현지에서 충당해야 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잘 몰랐던 것은 러시아가 큰 나라이고 농민들이 보급품 약탈은커녕 도와줘야할 만큼 가난한 형편이었으며 겨울의 추위가 그렇게 혹독한 줄 몰랐던 것이었다.

러시아군은 후퇴하면서 적군에 도움이 될 모든 시설에 불을 질러버리는 초토작전을 구사하면서 모스크바까지 밀린 후 다시 이를 포기하고 끝도 없는 후퇴를 계속했다. 모스크바만 함락하면 러시아가 항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데로 계속 후퇴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날은 점점 추워졌고 보급품 조달이 안 되는 프랑스군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기 시작했다.



결국 6개월에 걸친 러시아 원정은 실패로 끝나고 돌아온 프랑스군은 60만 명 중 3만 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되자 숨죽이고 엎드려있던 주변국들이 들고 일어났고 프로이센이 주동이 돼 제6차 대불동맹이 결성됐다. 1814년 3월 결국 변변치 않은 병력을 이끌고 유럽연합군과 워털루에서 조우한 나폴레옹은 패했고 연합군에 의해 파리가 함락됐다. 결과로 나폴레옹은 폐위되어 엘바섬으로 추방됐고 루이 15세의 손자이자 처형된 루이16세의 동생인 루이18세(1755~1824: 재위 1814~1815. 1815~1824)가 즉위하여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문의:(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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