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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봐준다던 남자와 강제 결혼, 13살에 첫딸

여자전사들: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김메리 그리고 가족(상)
아이 둘 낳고 19살에 이혼
가족 밀입국 위해 200달러 빌려

멕시코에 노예로 팔려간 김메리의 부모와 자녀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한국인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강인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김메리의 부모인 김윤원과 송애용은 가족들을 데리고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 유카탄반도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며 일포드호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끊임 없이 일해야 하는 아가베 농장의 강제 노동이었다.

김윤원이 세상을 떠난 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어머니 송애용과 어린 자녀들은 멕시코에 살고 있었다. 첫째 딸 메리는 그들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유년기를 희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의 영웅들을 키워냈고 인종차별 없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메리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당당히 맞섰다.

1905년 4월 4일 영국 국적 선박 일포드호가 인천항을 출항했다. 일용 노동자들 부랑자들 거지들 소작농들 양반들 전 왕실 관료들 그리고 군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그 배에 타고 있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는 조국으로부터 도망쳐 머나먼 종착역을 향해 떠나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1033명의 승객들 중에는 양반 출신인 31세 김윤원과 25세인 아내 송애용도 있었다. 부부는 두 명의 갓난아기들을 데리고 일포드호에 올랐다. 김윤원의 형과 형수 조카들도 동승했다.

김윤원과 가족들은 일제 치하에서 탈출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그들은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따뜻한 날씨를 누리면서 좋은 직장이 보장된다는 달콤한 선전을 철썩같이 믿으며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현실은 살이 따끔거리는 더위 아래서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아가베 농장의 강제 노동이었다. 김윤원 가족들의 운명은 국제 노예무역상들에게 달려있었다. 김윤원의 가족사에서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떠나온 한국인들의 비참한 현실과 그로 인해 가슴 깊게 맺힌 한을 읽을 수 있다.



김윤원(대니얼)의 가족은 아내 송애용(이사벨)과 자녀 메리 은순(마리아 루이자) 랠프 미도(라파엘) 도리스 와순(마누엘라) 줄리아 미순(줄리아) 폴 완도(파블로) 프랭크 영도(프란시스코) 피터 문도(페드로) 그리고 필립 영필(펠리페)이다. 랠프 폴 프랭크 피터 그리고 필립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왔다.

첫째 딸 메리의 파란만장한 삶은 생존해있는 가족들로부터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90세인 메리의 여동생 줄리아 김 함 이데 (Julia Kim Halm Ide)와 캘리포니아 비세일리아에 살고 있는 메리의 아홉 번째 자녀인 66세의 아넷 오캄포스 캘리포니아 벤투라에 사는 57세의 손자 팀서가 각각 인터뷰를 하며 메리의 삶을 증언했다.

줄리아 김 함 이데가 언니 메리의 삶에 대해 인터뷰했다.

1914년 나는 애리조나 국경 지역에 가까운 소노라지역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유카탄에 있는 아가베 농장에서 몇년동안 노예 생활을 한 후 멕시코를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한국에서 지체 높은 양반 계급이었다고 말했다. 일본 식민기간 동안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함께 도망치지 않았다면 일본인들에게 잡혀 죽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유카탄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자신들도 모르게 떠안은 빚을 청산하고 나서야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다섯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많이 아팠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슬프게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소노라에는 의사가 없었다.

아버지의 생김새나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다만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분이었다. 아버지가 광산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시간에 우리는 보통 잠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 교육을 강조했고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집에서 아버지와는 한국어로 소통했지만 우리는 곧 스패니시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광산에서 일하면서 시간이 나면 언제나 책을 읽었다. 굉장히 똑똑하고 숫자에 대한 개념이 철저해 감독관의 직책을 맡았다. 석탄을 캐내는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편안한 직책을 얻은 것은 행운이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고 싶어했다. 소노라는 국경과 매우 가까운 지역이었다.

부모님은 농장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의 양반이었고 어머니는 서울의 좋은 가문 출신이었다. 소개를 통해 결혼을 하기 전까지 외조부모님은 어머니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집에서 바느질은 배웠지만 글이나 요리는 배우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이었다. 어머니는 밭에서 일도 하고 집안에서는 설거지 빨래를 했다. 어머니가 밭에서 일하는 동안 언니 메리는 남동생 랠프를 돌봤다.

아버지는 교육을 받았고 매우 정직하며 공정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찾아왔다. 메리다에 있을 때 아버지는 지역의 리더로 활동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최초의 한국 교회와 한글학교를 설립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돕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어떻게든 도우려 했다.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독립적으로 자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공관을 통해 캘리포니아에서 온 박씨에게 "우리 딸 메리를 미국에서 교육시키고 싶습니다"라고 뜻을 전했다. 박씨는 언니의 후원자가 되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메리를 미국에 데려갔다. 아버지는 공관과 박씨를 믿었다.

그러나 언니는 로스앤젤레스의 고아원에서 6개월이나 지냈다. 그녀는 험상궂게 생기고 나이 많은 박씨를 싫어했다. 고아원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리고 영어를 모르는 메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언니는 한국어와 스패니시만 할 줄 알았다.

어느 날 박씨는 고아원에서 메리를 데리고 나왔다. 언니는 더 이상 박씨를 보지 않았으면 했지만 도움을 청할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언니는 박씨가 몹시 두려웠다고 한다.

박씨는 메리에게 결혼을 강요했다. 언니는 박씨와의 강제 결혼에서 13살의 나이에 첫딸 그레이스를 낳았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임신을 했다. 한동안 언니는 박씨와 살아야만 했다. 아이들을 맡기고 일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언니 메리는 아이들을 돌봐야만 했다. 어린 소녀에게 정말 가혹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큰딸에게 벌어진 끔찍한 일을 알고 난 후 몹시 상심했다. 그 여파로 맹장이 파열되어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메리는 가정부로 일하는 집 주인에게서 200 달러를 빌렸다. 어머니와 여섯 명의 형제자매를 미국에 밀입국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박씨에게 돈을 건넸다. 박씨는 차를 보내왔고 우리 가족은 그 차에 몸을 실었다.

어머니는 메리에게 나쁘게 행동하는 박씨를 좋아하지 않았고 종종 박씨와 충돌을 일으켰다. 어머니는 박씨에게서 우리를 보호했다.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한 후 언니 메리는 박씨와 이혼을 했다. 그 당시 메리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다. 박씨가 그녀를 죽일 것이라고 협박했지만 그만한 강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메리를 위협하기 위해 총을 가져와서 말했다.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너를 죽일 거야."

박씨는 아이들과 유타로 떠났고 메리는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사이 어머니는 다이뉴바에서 온 이주 농민 리우 씨와 결혼했다. 그 결혼은 박씨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리우 씨와 결혼 후 우리 가족은 다이뉴바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어머니와 언니 메리는 밭에서 일을 했고 다른 자매들은 아이들을 돌보았다. 어머니는 새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필립을 낳았다. 어머니와 새 아버지 그리고 오빠 랠프까지 모두 밭에서 일을 했다. 적은 임금을 받았지만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리우 씨가 83세에 돌아가 시기 전까지 어머니는 새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다음주 7화로 계속>

이경원 저ㆍ장태한 역
‘외로운 여정’에서 전재


정리= 장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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