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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의 시민권 미국 역사-2] '메이플라워'보다 13년 먼저 온 세 척의 배

<2> 최초 13개 식민지

#. 17세기 유럽의 민생은 처절했다. 전쟁과 굶주림, 전염병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1618~1648년 신, 구교도가 싸운 30년 전쟁 기간 동안 400여만 명이 페스트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다. 절망적 상황의 유럽인에게 신대륙은 한 줄기 빛이었다. 기회만 되면 너도나도 대서양을 건넜다. 신앙의 자유, 정치적 자유, 신분과 압제로부터의 자유를 찾아서였다. 그러나 가장 큰 목적은 배고픔으로부터의 탈출, 곧 돈벌이였다.

하지만 초기 이주자들이 겪은 악전고투를 생각하면 신대륙이 꿈의 낙원만은 아니었다. 목숨 건 뱃길, 척박한 기후와 풍토병, 부족한 식량, 사나운 원주민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다.

첫 정착촌 제임스타운

1620년, 유럽을 떠나 180톤 크기의 화물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102명의 영국인들이 지금의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원래는 버지니아로 갈 계획이었지만 풍랑을 만나 1000km나 북쪽 해안에 도착한 것이다. 이들은 영국 교회의 박해를 피해 식민지회사로부터 버지니아 지역 토지 권리증을 사서 목숨 건 대서양 횡단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항해 중 미지의 세계에 더 잘 정착하기 위한 규약을 스스로 정하고 서명했다. 유명한 메이플라워 서약이다. 이들이 바로 미국이 항상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최초의 미국인'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들이다. 하지만 실제 식민지 미국 역사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1585년, 월터 롤리 경은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을 답사하고 로어노크(Roanoke)라는 식민지를 건설했다. 하지만 정착민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첫 식민지가 될 뻔한 로어노크는 홀연히 사라졌다. 다만 월터 롤리 경이 붙인 '버지니아'라는 이름은 살아남았다. 버지니아는 처녀였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의 별명 버진 퀸(Virgin Queen)에서 따온 이름이다. 당시 버지니아는 지금의 버지나아와 달리 북미 대륙 동남부 평야지대를 통틀어 일컫는 지명이었다. 반면 북부 산악지대는 뉴잉글랜드로 불렸다.

1607년, 104명의 영국인들이 다시 건너왔다. 갓 스피드, 수잔 콘스턴트, 디스커버리라는 세 척의 배에 나눠 탄 그들이 도착한 곳은 버지니아 체사피크만이었다. 메이플라워호가 플리머스에 도착한 것보다 13년이나 먼저였다. 그들은 그곳을 영국 국왕 제임스 1세(재위 1603~1625) 이름을 따서 제임스타운이라 명명했다. 그들 역시 첫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반 이상이 죽었다. 하지만 반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최초의 신대륙 정착지를 탄생시켰다.

제임스타운의 기틀을 닦은 사람은 선장 존 스미스(1580~1631)였다. 인디언에게 붙잡혀 죽을 뻔 했지만 추장 딸 포카혼타스의 도움으로 살아났다는 바로 그 사람이다. 존 스미스는 훗날 신대륙에서 자신이 보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7권의 책으로 남겼다. 불과 1년 남짓밖에 지사 노릇을 안 했지만 버지니아 식민지 건설의 주역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다.

제임스타운의 또 다른 주인공은 존 롤프(1685~1622)였다. 포카혼타스의 남편이기도 했던 그는 1612년 버지니아 토착 담배에 좀 더 순한 자메이카 종자를 교배시킨 새로운 담배 재배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영국으로 내다 팔았다. 런던 사람들은 곧 담배 없이는 못 살 지경이 되었고 제임스타운은 번영하기 시작했다. 이제 버지니아는 담배 농사의 본거지가 되었다. 미국 역사의 어두운 한 그림자가 여기서부터 드리워졌다. 담배 농사는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불러들인 계기가 된 것이다.

100년 넘게 걸린 개척사

#. 미국은 50개 주로 되어 있다. 주는 영어로 스테이트(State), 즉 국가라는 뜻이다. 미국은 최초 13개 스테이트가 함께 세운 합중국(合衆國,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1776년 독립 이전까지 13개 주는 모두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인보다 먼저 북미 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도 많았다. 16세기에 시작된 식민지 확보 경쟁으로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페인 사람들이 먼저 신대륙을 휘젓고 다녔다. 1588년 영국함대가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은 뒤늦게 신대륙 개척에 나섰다. 첫 시작은 버지니아 쪽이었다.

1607년 최초 버지니아 식민지부터 1732년 마지막 조지아까지 13개 식민지가 설립되는 데는 100년이 넘게 걸렸다(지도 참조). 13개 식민지는 지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적으로도 많이 달랐다. 뉴잉글랜드라 불리는 북부 식민지는 영국계 청교도가 중심이었다. 종교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으며 풍부한 목재를 이용한 임업과 어업, 조선업 등이 발달했다. 중부 식민지는 밀을 중심으로 한 농산물 재배가 활발했고 무역과 상업이 크게 발전했다. 종교적으로 관대했기에 퀘이커, 가톨릭, 루터교 신자는 물론 유대인들까지 다양하게 몰려들었다.

뉴욕은 원래 1620년대 네덜란드인이 뉴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개척한 식민지였다. 하지만 1660년대 들어 영국이 강제로 빼앗았다. 당시 국왕 찰스 2세(재위 1660~1685)는 동생 요크 공작에게 이곳을 주면서 이름까지 뉴욕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네덜란드인을 비롯해 벨기에, 프랑스, 독일, 스칸디나비아인 등 다양한 유럽인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뉴욕이 지금까지도 다양한 민족과 인종들로 번영하게 된 토대가 그때 이미 형성된 것이다.

남부 식민지는 체사피크만을 낀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그리고 그 남쪽 사우스-노스 캐롤라이나와 조지아를 말한다. 비옥한 토질을 바탕으로 플랜테이션 형태의 대규모 농장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과장된 청교도 정신

#. 미국은 역사가 짧다. 보완할 건국 신화가 필요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낸 영웅들의 이야기, 용감한 서부 개척자들의 이야기가 모두 건국 신화가 됐다. 숭고한 청교도 정신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기독교 신앙인들의 의지와 관용은 지금도 미국을 지탱하는 최고의 미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만큼 늘 미화되고 과장되는 면이 있다. 영국 국교로부터 박해를 피해온 청교도들이었지만 신대륙에서 자신들이 되자 그들 역시 다른 종파를 허락지 않으려 했다. 가톨릭 신자나 퀘이커 교도, 위그노 등은 다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매사추세츠가 아닌 타 지역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신분제의 구습도 여전했다. 1700년 무렵 식민지 정착민은 약 25만명이었다. 1775년 미국 독립 직전에는 250만명으로 10배나 증가했다. 빈부 차이도 점점 커졌다. 신대륙 식민지는 엄연히 대영제국의 일부였다. 부자들은 다시 유럽 귀족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등 대도시의 특권 계급층은 자신을 완전히 영국인이라고 생각했다. 유럽풍의 대저택을 짓고 호화 파티를 열며 노예를 부리고 영국 귀족처럼 행세했다.

제임스타운은 버지니아 식민지의 행정 중심지가 되면서 자유 기업 정신, 법치주의, 민주 정부 등 미국식 제도와 관습의 대부분이 창안되고 실천되었다. 하지만 미국 역사에서 제임스타운은 늘 플리머스에 밀렸다. 몇 가지 '설(說)'이 있다. 하나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북부인들이 남군의 본거지였던 버지니아의 역사적 비중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플리머스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자랑스러운' 추수감사절 전통을 만들었고 그 후손들이 하버드, 예일 등 명문 대학을 설립해 미국 교육의 방향을 처음부터 그렇게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지난 2007년은 제임스타운 정착촌 건립 4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열렸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등 유명인사들의 방문도 잇따랐다. 미국 역사 출발지로서의 위상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도 높았다. 그로부터 10년, 관광객은 늘었지만 사람들 인식은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한 번 틀어진 역사는 바로 세우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논설실장



시민권 시험 문제 풀이


▶문:초창기 식민지 개척자들이 미국에 온 이유 중 한 가지는 무엇인가?(What is one reason colonists came to America?)

답:모범답안으로 제시된 것은 다음과 같다. 이중 하나를 말하면 된다.

①자유(freedom) ②정치적 자유(political liberty) ③종교적 자유(religious freedom) ④경제적 기회(economic opportunity) ⑤종교 생활(practice their religion) ⑥박해를 피해서(escape persecution)




▶문:처음에는 13개 주가 있었다. 그 중 3개만 말해 보라. (There were 13 original states. Name Three.)

답:미 동부 연안에 있던 영국의 13개 식민지가 독립전쟁 승리 후 신생 독립 미국의 최초 13개 주가 되었다. 북쪽에서부터 순서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뉴햄프셔(New Hampshire)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 ▶코네티컷(Connecticut) ▶뉴욕(New York) ▶뉴저지(New Jersey)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델라웨어(Delaware)▶메릴랜드(Maryland) ▶버지니아(Virginia)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조지아(Geor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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