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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엔 '피사의 사탑'만 있을까

이탈리아 중부
아르노강변 찬란한 유적지
대성당은 피렌체성당 모델
200년 걸린 산조반니 세례당

잘못된 건축의 대명사에서 세계적 관광지로 우뚝 선 '사탑'과 피사 대성당. 대성당의 부속 건물로 지어졌지만 그 기울기로 인해 대성당보다 더 이름난 건물이 됐다. 오죽하면 이곳에 오는 대다수가 피사사탑만 있을 거라 생각할까.

잘못된 건축의 대명사에서 세계적 관광지로 우뚝 선 '사탑'과 피사 대성당. 대성당의 부속 건물로 지어졌지만 그 기울기로 인해 대성당보다 더 이름난 건물이 됐다. 오죽하면 이곳에 오는 대다수가 피사사탑만 있을 거라 생각할까.

 대성당의 내부 모습. 팔레르모의 이슬람 모스크에서 가져온 68개의 기둥과 피사노의 설교단 등 로마네스크 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대성당의 내부 모습. 팔레르모의 이슬람 모스크에서 가져온 68개의 기둥과 피사노의 설교단 등 로마네스크 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산 조반니 세례당을 올려다 본 모습.

산 조반니 세례당을 올려다 본 모습.

이웃한 피렌체 출신의 피노키오 인형.

이웃한 피렌체 출신의 피노키오 인형.

아르노강을 건너 피사로 간다. 하늘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만났던 것과 다름없이 후기 인상파의 그 하늘이다. 고흐와 고갱, 세잔느가 작품 속에 투영했던 그 하늘, 뭉게구름이 도드라진 그 하늘….

이탈리아 중부 아펜니노 산맥에서 발원해 피렌체와 피사를 거쳐 지중해까지 150마일을 달리는 아르노강은 이 지방 토스카나 사람들에겐 농토를 비옥하게 해주는 젖줄이자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기울어진 탑(사탑)으로 유명한 피사 대성당이 자리한 피사는 한때 항구가 발달한 해상국가로서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했으나, 주변국들에 밀리면서 피렌체 공국에 합병되기도 했다. 지금은 항구의 기능을 상실한 채 다소 정체된 도시의 느낌이 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 사탑으로만 매년 100만 명이나 다녀가는 이탈리아 유수의 관광지다.

버스에서 내리니, 죽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이 피사의 사탑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사탑의 모형과 더불어 피노키오 인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니 반갑기 그지 없다. 피노키오는 이웃한 도시 피렌체 출신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로마지역 신문 어린이란에 36회로 나누어 발표했다가 1883년 출판한 책인데 이만큼 유명한 동화 주인공이 있을까 싶다.

곧이어 나타난 중세 시대의 성벽에 들어서니, 도토리 같은 돔을 가진 세례당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적의 광장'으로 불리는 이 곳에는 세례당과 그 너머로 피사 대성당, 그의 부속 종루인 사탑이 차례대로 서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처럼 사탑으로 먼저 눈길이 가니, 나 자신에게 헛웃음이 나온다.



시칠리섬 근해인 팔레르모해에서 사라센 함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이 대성당 건축이 시작됐다. 1063년 그리스인 부스케토에 의해 설계로 시작된 이 대성당은 1118년 준공되면서 성모마리아에게 헌당됐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라틴 십자가 모양을 한 이 대성당은 길이 311피트, 폭 104피트에 이르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전면의 파사드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다. 5층으로 연속된 아치들은 섬세함과 건물에 레이스를 펼친 듯한 우아함을 고루 갖췄다. 청동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양 옆으로 거대한 68개의 원기둥이 늘어서 있는데, 팔레르모의 고대 유적 모스크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1302년부터 11년에 걸쳐 피사노에 의해 만들어진 설교단은 이탈리아 고딕 조각을 대표할 만큼 화려하고도 정교하다. 이탈리아 화가 치마부예가 그린 천정화 '복음서 기자 요한'은 천정화의 최고 걸작으로 불린다. 비잔틴 양식과 이슬람 영향 등 여러 양식들이 고루 비치는 이 성당은 훗날 피렌체 대성당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하나의 돔으로 이뤄진 산 조반니 세례당 역시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대성당의 부속건물인 세례당은 피렌체의 대성당처럼 흰색의 대리석 몸체와 함께 붉은 기와 지붕이 인상적이다. 하나의 성채처럼 지어진 이 건물은 1152년 착공해서 완성되기까지는 200년 이상이 걸렸다. 반원형 아치를 많이 채용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세례당은 그 많은 아치로 인해 건물을 안전하게 지탱하기 위해 기둥도 굵고, 창문도 작게 만들 수 밖에 없었는데, 이로 인해 세례당은 요새와 같은 견고함이 느껴진다. 세례당 안에는 본당과 같이 1260년 피사노가 만든 설교단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십자가에 달린 예수, 최후의 심판'이 조각돼 경건함을 더해주고 있다.

조바심치는 마음을 다스리며 세례당까지 둘러봤으니, 이제는 망설임없이 사탑으로 달린다. 이곳에 오느라, 공부를 좀 했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경주의 첨성대처럼 관광지에 사탑만 덩그러니 서 있을 줄 알았다. 많은 이들이 피사를 찾는 이유가 바로 피사의 사탑을 보러온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 말이다. 대성당과 세례당만을 보려 했다면 피렌체를 갔을 것이다.

사탑으로 다가가니,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열심이다. 제각기 기울어진 사탑을 밀어 올리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데, 마치 태극권을 수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매불망 보기를 갈망했던 것과는 달리, 사탑 앞에 서니 별다른 감흥이 없다. 마치, 수년을 벼르는 동안 인터넷에서 이미 먼저 만났던 탓에 '30초의 감동'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랜드 캐년을 마주했던 느낌이랄까.

하지만 180피트의 높이와 디테일을 어찌 인터넷에서 대할까. 기울어진 이유 말고도 이 탑을 찾아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피렌체의 네모진 조토의 종탑과는 달리 원기둥을 채용했고, 층층이 아치를 만들어 여성스럽고 우아하다. 1173년 공사를 시작해 1372년에 완공했으니, 200년 가까이 걸렸다. 원래 330피트 이상의 거대한 종탑을 짓기로 했는데, 30피트 높이에서 벌써 기울기 시작해 현재의 높이로 지어졌다. 약한 지반에다 지하로는 겨우 10피트 밖에 내려가지 않아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지만, 세상에서 잘못된 건축으로 인해 유명한 건물이 된 최고의 사례가 아닐까. 공사 중과 공사 이후에도 기울기가 계속되자, 1990년대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행해져 2001년 완료된 보수 공사 이후, 기울기가 멈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백종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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