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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벼랑에 핀 한떨기 꽃, 기적

믿거나 말거나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 믿는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난다.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내일이 있다고 믿는 오늘이 기적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 손과 발이 움직이고 세수 하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 어둠을 가르고 실핏줄처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 들이키는 일, 애들이나 친구가 보낸 문자나 사진 보며 혼자 웃는 일, 부대끼는 일상 속으로 미끄럼틀 타듯 엉덩방아 찍으며 하루 일과를 마치는 일, 살아있는 평범한 모든 일들이 기적이다.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가고 폭탄이 터진 폐허 위에 울부짓는 사람들. 부모 잃고 삶과 죽음을 가늠 못하는 전쟁고아들의 공허한 눈망울. 허리케인과 재앙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자들의 울부짖음과 생명을 담보로 국경을 넘는 절박한 난민들의 소름 끼치는 비참한 절규! 그들이 믿는 것은 오직 기적뿐이다. 오늘을 버티고 살아남아 내일을 맞는 기적이다.

애가 애를 낳았다. 막내 크리스가 철들기도 전에 일찌감치 장가 가더니 며칠 전 딸을 낳았다. 아기 안고 있는 아들 사진이 낯설고 믿기지 않아 인형을 안고 있나해서 보고 또 들여다 본다. 우서방 할배는 눈도 코도 분간 안 되는 손녀 사진 본다고 잠을 꼬박 설쳤다. "검진 갔는데 이상 없음. 병원 의사 앞에서 똥 쌌다"는 문자 받고 "넌 할머니 얼굴에 오줌 쌌다"라고 답신을 보낸다. 딸 둘 낳고 늦둥이로 얻은 아들은 기저귀 갈 때마다 어머니 얼굴에 줄기차게 오줌을 갈겼다. 그래도 건장한 고추 달렸다고 흐뭇해 하시던 어머니! 리사가 태어났을 때 차가운 병원 바닥을 맨발로 정신없이 허둥대며 수술실을 오가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내 첫딸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십이지장이 막힌 채 심장기형으로 태어났다. 24시간 내에 수술 못하면 생명를 잃게 되는데 신생아 수술을 집도할 의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근데 기적일까? 리사가 태어나기 일주일 전 미육군 부대에 미세수술(Microsurgery) 담당할 의사가 부임해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다. 수호천사는 절망의 고비마다 희망과 기적을 주는 걸 잊지 않는다. 일곱살 넘기지 못하고 수술해도 움직이지 못할거라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리사는 심장수술 받은 뒤 정상아보다 더 튼튼하게 직장생활하며 행복하게 산다.



기적은 믿는 자에게만 효험이 있다. 그냥 대충대충 설레벌레 믿는 게 아니라 이판사판 목숨 걸고 믿고 맹세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선물 한다.

음악가에게 사형선고인 귓병 때문에 유서를 쓴 다음, 자신에게 주어진 음악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고 결의한 베토벤은 그 후 수많은 걸작을 쏟아낸다. '감람산의 예수 그리스도'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고뇌하는 예수의 모습이 듣지 못해 고뇌하는 베토벤의 비통한 모습과 절묘하게 닮아있다. 우연에서 필연으로, 없음에서 있슴을 보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져보고, 듣지 못하는 귀로 불후의 명곡을 만드는 기적의 힘은 불타는 생의 열정에서 나온다.

주눅들지 말고, 어리광피우지 말고, 돌아설 생각 말고, 후회하지도 미련 갖지도 말고, 뒤처지더러도 뒤돌아 보지말고, 언터쳐블(Untouchable)을 용감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의 가슴은 싱싱한 물고기의 비늘로 퍼득인다. 기적은 소명이다. 부름 받는 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기적은 하늘이 주는 운명의 축복이고 아픈 생의 고비마다 목을 적시게하는 벼랑에 핀 한떨기 생명꽃이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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