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문학 산책] 뜻을 세우다

2019년 기해년을 맞이하며 연어를 떠올린다. 연어는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높은 강둑을 뛰어넘다가 돌에 찔려 새의 밥이 된다고 할지라도 뜻을 꺾지 않는다. 고향에 도착할 즈음이면 연어의 모습은 살점이 반이나 떨어져 나가고 비늘이 벗겨져 만신창이가 되지만 행군은 계속된다. 연어는 강을 거슬러 헤엄치느라 몸속의 단백질을 거의 소진한 상태로 알을 낳을 곳을 찾아내고 혼신을 다해 자갈을 파낸다. 자갈 위에 알을 부화한 뒤 알 위에 정액을 뿌린다. 혹 생명이 포식자들의 먹이가 될세라 파낸 자갈을 죽을힘을 다해 다시 알 위에 덮는다. 그리고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한 치의 후회도 없이 허연 배를 수면에 띄운 채 생을 마감한다.

연어의 생은 충분히 극적이다. 민물에서 태어난 것도 바다로 떠난 사는 것도 그리고 고향의 물맛과 냄새를 잊지 않고 강을 거슬러 올라 고향으로 회귀의 아름다운 본능도, 고향으로 돌아가 알을 부화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모습도 드라마틱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연어의 삶과 죽음에서 허무함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는 이 이상한 카타르시스는 무엇일까?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연어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살아있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의미'이다. 생명을 위한 죽음조차도 '뜻'이다. 의미가 거센 물살도 죽음도 두렵지 않게 한 것이다. 연어에게 뜻은 길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격언이 있다. 풍요와 편리함 속에 묻혀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퀴퀴 묵은 격언이 주는 의미가 크다. 크고 거창해야만 뜻일까? 아니다. 뜻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리와 정의가 뒷받침한 것임은 틀림없다. 깨어있는 의식과 인내가 속뜻인 것도 분명하다. 진리와 정의의 색이 흐려지는 세상에서 물질이 아닌 것들이 묵인 당하고 작고 소소한 것들이 무시당하는 사회에서 '뜻'은 의미의 본성일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달라는.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는.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어 한다는.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의미가 되길 미치도록 열망한다는.



새해에는 작은 일에도 뜻을 세우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기억하라. 존재의 본질은 의미이다. 부디 강을 거슬러 올라 생명을 부화하는 연어처럼 의미에 마음을 쏟는 삶이기를 소망한다. 당신은 오래 전부터 서로에게 하나의 의미로 태어나길 애타게 기다리지 않았던가? 뜻이 사라진 패망의 성에서 고독한 군주로 서성이며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갈망하지 않았던가?


김은자 / 시인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