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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콩트) '방콕' J 씨의 하루

어느 80대의 일기장 (81)

밤새도록 엎치락 뒤치락, 이 생각 저 생각, 자는 둥 마는 둥 잠을 설치다가 새벽 일찍 잠을 깬다. 멀뚱 멀뚱 눈을 뜨고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고 목적도 없다.

일하러 직장엘 갈 일도 없고, 어디를 가야 할 예정된 약속도 없다. 그러면 오늘은 또 뭘 하지?

아무 할 일이 없다. 그래도 일어나긴 해야지…끙끙거리며 힘겹게 일어난다.

두 팔을 휘둘러 보고 목을 전후 좌우로 움직여 본다. "응, 오늘 하루는 괜찮겠구나…"



다시 두 발을 뻗었다, 굽혔다 해 본다. 그리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해 본다. 어디 결리거나 아픈 데가 없다. "응, 오늘 하루는 지낼 수 있겠구나…"

아침 식사 식탁에 앉는다. 이빨 하나 없이 뭘 먹는다는 것이 너무나 큰 고역이다. 죽이나 군 감자를 잇몸으로 우물우물 억지로 삼킨다.

"이빨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는 말, 얼마나 힘든 일인지 치아 가진 사람들은 모른다. "왜 그 고생을 해요? 어떻게 조치를 해야지요." 집 사람은 치과를 가라고 성화다. 마이동풍, 죽어도 가기 싫다. 몇 숟가락, 몇 입 치레,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숟가락을 내던진다.

방안을 왔다 갔다 서성거린다. 산책을 나갈까? 샤워를 할까? 세수하고 틀니를 끼우고 옷을 주워 입고…너무나 귀찮다. 산책에 나설 엄두가 안 난다. "조용히 걸으며 사색, 얼마나 좋으냐? 칸트를 본받으라." 친구의 간곡한 충고, 좀처럼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

다시 침대에 누워 한국어 신문을 펼쳐 든다. 지금 이 곳 나의 삶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뉴스들, 읽어 볼 흥미가 안 난다. 옛날엔 부정 부패 비위 기사를 볼 때면 "죽일 놈 살릴 놈" 의분을 느끼고 탄식을 했는데, 이제는 "뭐, 세상이 다 그런 거지…" 그저 무덤덤이다.

지루한 하루, 어정버정 하는 사이 그래도 시간은 흘러 석양이 깔린다. 또 하루가 지나 갔구나…오늘 뭣을 했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무위도식, 허송세월. 하루 '시간 죽이기(killing time)'가 너무나 지겹다. "시간이 곧 삶(Time is Life)" 이라는데…또 넋두리가 나온다. "이게 사는 거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Living is not Living)."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나 보다 훨씬 더 고령이지만 얼마 전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호주 데이빗 구달 박사(104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있는 게 유감이다. 죽는 것 보다 죽지 못하는 게 슬프다…. 나는 더 살고 싶지 않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지루하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오늘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면'? 내일은 '살만한 날'이 올 것인가? "내일도 아침에 눈을 뜨게 해 주시옵소서" "내일 일랑 영영 눈을 뜨지 않게 해 주십소서."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두 기도를 동시에 하면서 오늘도 또 잠자리에 든다.

[Quote 81-1]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엔, 나는 인생을 헛되이 살지는 않으리라(While I am still live, I may not live in vain)." -R.W. 에머슨

[Quote 81-2] " 인생은 두 번 반복되는 이야기 만치나 지루한 것이다(Life is as tedious as a twice-told tale)."- 셰익스피어 'King John'

https://dmj36.blogspot.com


장동만 / 언론인·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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