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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평화 실현엔 섬김·희생 감수 종교인들 있어

3월 여성역사의 달 기념 행사
역사에 공헌 7인 종교인 선정
테레사·잔다르크·웨슬리 등

3월은 미 정부가 정한 '여성 역사의 달'이다.

미 공립학교와 직장.지역사회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열리고, 곳곳에서 미 역사에 공헌한 여성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종교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여성 지도자들은 누굴까. 크리스천 포스트가 여성 역사의 달을 맞아 미국의 사회 발전과 역사에 족적을 남긴 7명의 여성 종교인을 선정, 발표했다.

잔 다르크=흔히 깃발을 들고 백마 위에 올라탄 기사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잔 다르크는 1412년 프랑스 북동부 지방 동레미에서 농부의 딸로 어났다.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년 전쟁에 참전,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녀는 서구 문화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애국주의의 상징인 그녀는 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소재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 때문에 잔 다르크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와 만화·소설·회화 등의 작품들이 6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수잔나 웨슬리=1669년 출생한 수잔나 웨슬리는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찰스 웨슬리의 어머니이자 감리교의 시조 어머니로 불린다. 수잔나 웨슬리가 오늘날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그의 아들 존 웨슬리 때문이다. 수잔나는 아들 존 웨슬리에게 철저한 신앙교육을 시켰고, 그 덕에 18세기 영국의 부흥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성장한다. 찬송가 작사가면서 영국의 신학자인 찰스 웨슬리도 그의 아들이다. 수잔나의 남편인 사무엘 웨슬리는 엡윗교구를 담당했던 목사이며 수잔나의 외가도 철저한 청교도 가문이다. 그의 외조부는 당시 영국교회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으로 유명했다.

페니 크로스비=시인·작사·작곡가·선교사로 활동했던 그녀는1820년 출생했다. 불행히도 생후 6주만에 실명해 평생 맹인으로 살았던 그녀는 뉴욕 브루클린의 '6번가 침례교회' 교인으로 당시 로버트 로우리목사와 함께 수많은 찬송가 가사를 썼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많은 찬송가를 작사한 음악가중 한 명으로 8000곡 이상의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작곡했다.

시인이기도 한 크로스비는 1000 여편의 시를 집필했고 생전 4권의 시집과 2권의 베스트 셀러 자서전을 출판했다.

찬송가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는 한인들 귀에도 익숙한 찬송가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예수 나를 위하여' '너희 죄 흉악하나' '예수께로 가면'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의 영원하신 기업'등을 작사. 작곡했다.

캐서린 부스=1829년 출생. 캐서린 부스의 공로가 아니었다면 구세군은 아마 이 세상에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윌리엄 부스를 구세군의 창시자로 여기지만 사실 구세군이 탄생해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그의 아내 캐서린 부스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열심히 사역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성들은 이제 겨우 남녀 평등이란 개념에 대해 눈을 뜨고 있었고, 여자가 강단에 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때였다.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긴박한 명령에 비추어 볼 때 여자도 설교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그녀는 자기 자리를 고수하며 계속 설교해 당대의 가장 유명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이 됐다.

도로시 데이=1897년 출생한 사회 운동가이자 종교인. 젊은 시절 도로시 데이는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려 지내며 누구보다도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이었다. 하지만 가톨릭으로 회심한 뒤에는 단돈 57달러로 급진주의 신문 '카톨릭 일꾼'을 펴냈고 나눔을 실천하는 '환대의 집'을 열어 세상의 평화를 일궈내기 위해 일평생 애썼다.

도로시 데이는 말없는 자들의 말이 되고, 평화를 빼앗긴 자들의 칼이 되고, 가난한 자들의 이웃이 되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1973년 노트르담 대학교는 도로시 데이에게 레테르 훈장을 수여하며 "일생 동안 괴로운 사람은 편안하게 해 주고 편안한 사람은 괴롭게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테레사 수녀=1910년 출생,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 인도 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라는 천주교 계통 수녀회를 설립했다. 이후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인도와 다른 나라들에서 헌신했다. 그녀의 본명은 아녜저 곤제 보야지우로 인도 출신 수녀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1980년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받았다. 이후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는 계속 확장, 그녀가 사망할 무렵에는 나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무료 급식소·상담소·고아원·학교 등을 포함,123개 국가에 610개의 선교 단체가 세워졌다.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세상에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기 어렵다. 그 배후에는 늘 희생과 섬김의 본을 보였던 종교인들이 있었다.


임은숙 기자 rim.eunsook@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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