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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씨앗의 힘

조소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대상

나의 미국 초등학교에서의 교생 실습이 3달째를 맞이하고 있다. 고민도 많고, 자책과 후회 혹은 불안함이 덩어리가 되어 내 어깨에 스트레스로 뭉치는 기분이다. 그러함에도 어떤 짧은 감동적인 순간들이 있어서, ‘그래. 그래도 포기하면 안된다.’ 라고 마음을 다진다. 며칠 전에는 학부모와 담임 선생님 간의 만남을 갖는 자리에 참관했다. 초등학교 5학년 14명의 담임을 맡고 있는 내 멘토 선생은 평소와 달리 파란 눈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체육관에서 테이블 하나를 두고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피곤함이 몰려 왔다. 멘토 선생과 나는 총 9명 학생의 학부모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금발의 남성이 가장 먼저 학부모 자리에 앉았다. 멘토 선생이 미리 준비한 자료와 학점 카드를 내밀며 설명을 했다. 당신의 자녀가 현재까지의 학점이 이러이러하고 어떤 점이 취약하다. D학생의 아버지였다. 그 학생은 학급에서 가장 열심히 하고, 성적이 좋은 그룹에 속한다. D 도 아빠처럼 키가 크고 늘씬하고 금발에 얼굴의 주근깨가 귀여운 학생이다. 그런데 D는 늘 시험을 잘 봐도 불안해 하거나, 한 두 문제만 틀려도 눈물을 그렁그렁 보이며 ‘우리 집에선 B는 용납이 안돼요. 아빠가 이 점수를 보시면 정말 화를 내실거에요.’ 라고 말해서 교생인 내 눈에는 ‘초등학교 5학년인데 저렇게 학점에 스트레스 받는게 건강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교생으로서 이 모든 나의 생각들을 다 풀어내는 건 멘토 선생과 사전에 상의도 하지 않았기에 그저 일기로만 남겼다. 그런 D의 아버지를 보니, 이 아이가 참으로 분주하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생활하는게 그려졌다. 이것은 또 그들의 가족 문화구나.

이 학급에서 가장 재미나고 엉뚱한 말을 많이 하는 학생은 A다. A는 체육관에 갈 때 줄을 서서 조용히 가라고 하면, 난데 없이 “I am a big fat donut! 나는 뚱뚱한 도넛이에요!” 라고 말을 해서 나도 엄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웃음이 팍 터졌다. 소리 내어 책의 몇 페이지를 읽는 시간에 옆에 앉아 있는 짝궁 여자 아이와 종이 쪽지에 뭔가를 끄적거리며 낄낄거리기에 뺏았었더니 글쎄 동그란 사람 얼굴 옆에 I love you. 라고 써 놓았다. 그런 개구쟁이 A와 똑같은 눈매를 가진 A의 엄마가 우리 앞에 앉았다. 조금 어눌한 영어로 ‘우리 아이가 6학년 중학생이 되는데 문제가 없나요?’ 라고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을 통해 이미 부모가 자녀의 학업 수준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사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교사가 보는 것에 비해 더 크게 혹은 과장해서 자녀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My son is very intelligent. She is so smart. 등등의 말들을 하는 부모들의 눈빛이 ‘난 정말로 내 자녀가 그러하다는 것을 믿고 있다.’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내 아이가 이렇게 똑똑한 데 왜 성적은 이 모양일까. 그것은 아마도 당신 (교사) 때문 아닌가. 라고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내가 이 학급에서 참 ‘참하다’ 라고 생각되는 여자 아이가 있다. 멘토 선생이 보기엔 이 아이가 좀 지나치게 조용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그 아이는 침착하고 차분함을 몸에 벤 아이 같았다. 그 아이는 깊은 눈빛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과 똑같이 깊은 눈빛과 회색빛 눈동자를 가진 이 아이의 엄마가 갖난 아기를 앉고 흰 잠바를 입고 우리 앞에 앉았다. 우중충한 콜로라도의 시월 말 날씨는 결국 오후가 되니 흰 눈으로 바뀌었다. C 학생의 엄마는 우리를 보자마자 빠른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했다. 그러나 멘토 선생도 나도 스페인어로 대화할 능력이 없었다. 이 학교는 카톨릭 사립 학교인데 대략 70-80 퍼센트는 부모가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2세 히스패닉이거나 아니면 집에서는 스페인어만 쓰는 1세대 이민 가정이다. C 학생은 늘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는데, C의 리포트 카드에 유일하게 딱 하나만 B였다. 빠른 스페인어를 하는 학생의 어머니의 말 자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내용은 분명히 알아들었다. B! 다행히 7학년 담임 선생님이 스페인어가 가능해서 통역을 부탁했고, 의사소통 문제가 사라졌다. C 학생과 어머니의 깊은 눈빛과 차분함은 그 자체로 내게도 어떤 감사함, 힐링, 좋은 느낌을 전달해 주었다. 아름다운 사람을 바라보고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좋은 향내를 맡는 그런 기분이었다.



물론 고약한 인격을 내뿜는 부모 혹은 학생들도 있다. 학생이 얼마나 학구적인가는 사실 둘째 문제가 아닌가. 늘 말대답을 하고, 한 가지라도 잘못 말하거나 상대방에게서 약점을 찾아내면, 선생이라 할 지라도 무시를 하고, 교생인 나는 학교 건물에 접근성이 없어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꼭 바로 이 학생 Z가 아침부터 내 기분을 상하게 할 때가 참으로 많다.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라고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그런 상식을 기대하는 내가 너무 한국적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쥐방울 만한 아이는 나를 보고 문만 열어주고 가 버린다. 그래. 내가 5학년인 너와 무슨 씨름을 하리. 하며 마음에 생긴 어두운 그림자를 지울 때가 많은데, 그 아이의 부모도 놀라울 정도로 아이와 닮아 있었다. 일단 껌을 씹으며 조금 거만한 태도로 리포트 카드를 보고 불쾌한 태도로 이리 저리 따지지만, 선생의 일은 되도록 객관적인 태도로 자신이 가르친 내용과 학생의 학업 능력과 태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 맞다.
그 밖에도, 아니 어쩜 저렇게 똑같이 생겼을까? 멀리서 봐도 학생과 너무도 닮은 어머니를 보고, 우리는 그녀를 처음 봤지만 그녀가 S의 어머니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날 오후 늦게 남편이 학교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어땠어? 라는 그의 말에 나의 한마디는 “역시 그 부모에 그 자녀야.” 내 말에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집게 손가락을 내게로 향했다. 내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겠지. 때마침 엄마에게서 SNS가 날라왔다. 그래도 시차가 한 시간 밖에 나지 않는, 페루에 거주 중이신 엄마는 생애 최초로 ‘나 홀로 페루 아마존 배낭여행’을 하고 계셨다. 아마존의 악어들을 찍어 보내주셨다. 육십 대에 페루의 곳곳을 찾아 다니는 엄마처럼 나는 내 안의 힘을 믿고, 조금씩 한발씩 내밀어야겠다.

조소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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