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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돌아온 조의금 봉투

최인성 / 기획콘텐트부장
최인성 / 기획콘텐트부장 

[LA중앙일보] 발행 2019/12/23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9/12/21 21:08

15년 만에 베트남커뮤니티 리더들을 한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모두 2004년 전제용 선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나서서 환영했던 사람들이다.

베트남은 이민 시기로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73년 참전 미군의 사이공 철수와 함께 마지막 헬리콥터로 상징됐던 패전 피란민이 첫번째다. 이들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난민 지위를 부여해 오렌지카운티와 텍사스 휴스턴에 정착해 나름의 이민사회 시작을 주도했다. 두번째로 큰 구성을 이루는 그룹이 바로 보트피플이다. 70~80년대 브로커에게 뱃삯을 내고 망망대해를 헤매다가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의 인도적 조치로 타국에 정착하고, 다시 미국이나 캐나다를 최종 목적지 삼아 이주한 이들이다. 대부분 해적과 범죄 집단의 희생양이 됐다고 하니 생존자들은 '천운'을 타고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 그룹은 아직 소수이지만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정식 이민 오거나 유학와 정착한 경우다.

15년 전 전 선장을 반긴 것은 헬리콥터와 보트피플 세대들이다. 같은 보트는 아니더라도 때로는 부모와 자식, 형제들을 잃는 희생을 감수하며 미국에 왔고, 어렵게 정착한 아픔이 있는 이들은 전 선장을 ‘구세주’처럼 환영했다. 헬리콥터 세대의 동병상련도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전 선장의 추도식이 열린 사원에서 밴 트랜을 15년 만에 만났다. 2004년 당시 가든그로브 시의원이었던 트랜은 베트남커뮤니티 입장에서는 ‘정치 희망주’였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이후 베트남계로는 최고위직인 가주 하원에 입성(2004년 12월)했다. 곧 이어 루이지애나에서 조셉 카오가 연방하원에 당선되면서 최고위직 기록에서는 밀려났지만 남가주 베트남계에서는 적잖은 역할을 해왔다. 6년 동안 하원의원을 지낸 그에게 “이젠 정치 은퇴한거냐”고 물었다. 흥미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일과 직장은 은퇴가 있지만 정치엔 은퇴가 없다고 본다. 은퇴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가든그로브와 웨스트민스터 베트남인들이 운영하는 미용실, 식당, 찻집 등에는 항상 유권자 등록용지가 돌아다닌다. 눈에 자주 보이니 친근해지는 것일까. 선거마다 투표율도 높다. 이들에게 정치는 생존이자 생활이 된 것이다.

베트남계는 짧은 이민 역사에서 연방의원을 배출했고, 주정부, 연방정부에도 적지 않은 숫자의 공무원들을 배출했다. 돌아갈 조국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여기가 터전이고 조국이 된 것일 터이다.

전 선장 추모식에 모인 베트남 사람들은 여전했다. 전 선장의 난센상 후보 추천을 주도했던 인권변호사도 여전히 현장을 뛰고 있었고, 비영리 단체를 꾸렸던 봉사자들도 여전했다. 2004년 당시 선뜻 돈을 내놓고 싶다며 현금 다발을 가져왔던 버스회사 대표도 여전히 비즈니스를 꾸려가고 있다.

그래서 였을까. 추모식을 주도했던 피터 누엔씨에게 전달한 조의금이 며칠 전 되돌아왔다. 보트에서 구조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아닌 15년 전 로컬의 베트남 커뮤니티 인사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누엔씨가 이미 은퇴해 재정적으로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기자와 추도식 참가 한인들의 걱정이 기우였던 셈이다.

머쓱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부럽기도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유권자 등록 용지 만큼이나, 이들 커뮤니티가 끈끈한 단결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민역사 100년을 넘어선 우리가 이들에게 배울 점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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