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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나는 혹시 '소비가축'이 아닐까

황상호 / 기획취재부 기자
황상호 / 기획취재부 기자  

[LA중앙일보] 발행 2017/09/11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17/09/10 17:11

"서면 어떡해요 밟아야지" 노란불 교통 신호에 기준이 차를 세우자 옆 좌석에 있던 지우가 짜증을 낸다. 기준은 성격 급한 사람이 인도 여행은 왜 다녀왔나며 맞받아친다. 2010년 개봉한 영화 '김종욱 찾기'의 한 장면이다.

지난해 가을 나는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 주변에서 왜 인도를 가냐는 질문이 많았다. 그냥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아니, 객관식 질문을 던진다면 기타 란을 하나 만들어 괄호 안에다 이렇게 썼을지도 모른다. 시신을 태워 강물에 흘려보내는 도시 바라나시를 꼭 한 번 보고 싶었다고.

'너랑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도착한 인도의 수도 뉴델리. 뭔가 방랑자처럼 보이기에 으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아수라가 그런 아수라가 없었다. 공항에서부터 호객꾼이 "밤에 이동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예약한 호텔을 취소하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고, 목적지로 가려고 이륜차인 툭툭을 타면 목적지는커녕 운전기사가 브로커 행세를 하며 수수료를 받아 먹으려고 끈질기게 들러붙는다. 맛집, 여행사, 환전 등등. 그렇게 억지로 도착한 여행사에서는 다시 가격 흥정이다. 욕이 턱까지 치받는다. 길에서는 오토바이에 부딪히고 승용차에 치이고…아, 나의 바라나시여, 술값마저 비싼 인도여.

가끔 여행하다 보면 멍할 때가 있다. 물속에서 눈을 뜬 것 같은 흐릿함, 귀가 멍멍해지는 아득함, 각막에 셀로판지 두어 장은 덧댄 듯 답답함이다. 인터넷에 접속해 자판을 두드려본다. 무기력증, 만성피로 증후군, 우울증, 그것 중 무엇 하나인가. 인도 여행이 그랬다. 강렬한 향의 커리가 가끔 나를 위로해주지만 타지마할의 거대한 백색 대리석은, 붉은 사암으로 쌓아올린 육중한 사원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했다.

때때로 미국 여행도 그렇다. 덴마크 마을인 가주 샌타바버러 솔뱅을 가도 유럽같은, 미국같은, '같은' 것들 천지다. 하루는 밤하늘 별을 찾아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찾았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기암괴석과 삼지창처럼 세워져 있는 선인장들이 이색적이었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유성은 단짝인 아내를 충분히 매료시켰다. 이만하면 성공적. 다만 나는 그날 밤, 모든 것이 다 귀찮고 미웠던 날 혼자 오른 지리산 정상의 석류빛 노을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같은 것들의 테러' 철학자 한병철은 주체가 사라지고 복제품만 남은 세태를 이렇게 비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닌 남들이 보고 싶은 것을 찾아 지치도록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진정한 의미의 경험은 없다. 경험은 "우리를 기습하는 것, 우리를 맞히는 것, 우리를 덮치는 것,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 우리를 변모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지 못한 현대인을 '소비가축'이라 일컫었다. 나의 표현대로 가공한다면 민중, 아니 적어도 나는 개, 돼지다.

벌써 9월이다. 서둘러 가 봐야할 여행지를 꼽아 본다.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슬롯머신도 당겨봐야 하고 샌디에이고에 가서 시월드를 간 다음 라호야 해변도 거닐어 봐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금문교를 등지고 인증샷을 남겨야지. 근데 겁이 난다.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다 보고 난 뒤 뭘 해야 하는가. 그래서였던가. 영화 '김종욱 찾기' 속 여주인공 지우는 모든 일들의 결말이 두려워 먹던 호두과자마저 늘 한 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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