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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나를 지탱해준 힘은 기독교 신앙"

보수의 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지다
포로 시절 성경 읽으며 신앙 다져
석방 후 베트남 관계 개선에 앞장

표밭 보수 교계 향해서도 쓴소리
"타협 없고 독선적 인식은 안 돼"
늘 겸손 강조하며 품격 잃지 않아
상대 존중하고 옳지 않은일 반대


지금 미국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 25일 뇌종양으로 애리조나주 자택에서 82세 나이로 숨을 거둔 그는 정치적 진영을 떠나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불리며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그는 해군 소속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었다. 당시 작전 중 비행기가 격추돼 포로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한쪽 다리를 절게 됐다. 그 장애는 평생 매케인에게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주기보다는 오히려 겸손과 희망을 소유하게 하는 축복이었다. 매케인 의원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이면에는 기독교 신앙이 기반이 됐다. 정치인 매케인 이전에 그는 신앙인이었다.


모두가 할리데이 정도로 생각하던 크리스마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왔던 크리스마스에 존 매케인은 그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베트남 포로 생활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그는 모든 희망이 단절돼 있던 수용소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외부에 있었다면, 아니 미국에 있었다면 가족 또는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낼 시기인데, 수용소 안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는 매케인에게 사색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는 다른 포로들과 함께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함께 읽기 시작했다.

매케인은 "그때 성경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었다"며 "크리스마스에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다른 포로들과 함께 예배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생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옥 같던 지하 감방에서 오랜 포로생활로 인한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오직 기독교 신앙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매케인이 수용소 벽에 누군가 써놓았던 글귀(나는 전지 전능한 하나님을 믿는다)를 보면서 하루하루 기도하며 고통을 이겨냈던 일화는 유명하다.

매케인은 수용소 안에서 극심한 고문에 시달렸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피해로 마음속에 쓴 뿌리가 자랄 법도 한데, 그는 훗날 수용소에서 석방된 뒤에도 베트남이라는 국가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인이 돼서는 평소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애썼다. 이면에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이 그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VNA와 VN익스프레스 등 베트남 국영매체들도 매케인의 별세소식과 함께 그의 이 같은 역할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친구, 화해의 인물 등으로 묘사했다. 또, 주베트남 미국대사관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한 건물에서 매케인을 위한 조의록을 쓸 수 있도록 장소도 마련했는데 이는 그만큼 그가 전후 미국과 베트남 관계를 위해 얼마나 공헌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늘 공공연하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해 왔다.

매케인은 미국 대권에도 두 번이나 도전했었다. 물론 모두 낙선했지만 그는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었다.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하는 표밭인 '바이블 벨트'를 향해서도 비판 발언을 하는 등 소신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첫 대선 때 보수 기독교계의 유명 인사였던 팻 로버트슨 목사가 연일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 발언을 계속하자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또, 대형교회인 코너스톤교회의 존 해기 목사가 "당시 나치가 유대인들을 유럽에서 학살하고 추방한 것을 우리가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모든 건 신의 뜻 안에 있다"고 설교하자 이 발언을 강력하게 성토한 바 있다. 자칫 보수 교계 유권자가 이탈해 표를 잃을 수 있음에도 이를 의식하지 않고 소신 발언을 한 것이다. 이러한 행보 때문에 매케인은 평소 공화당 내에서도 '이단아(maverick)'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서는 늘 반대했다. 극보수 기독교계의 타협 없는 독선적 인식에 대해서도 "그들은 불관용의 대표적인 사람들"이라며 편협한 근본주의 기독교계에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한때 매케인을 못 미덥게 여기기도 했다. 아니 못 미더운 것을 떠나 거의 매케인에 대한 혐오를 표출할 정도였다.

미국 최대 보수 기독교의 라디오 방송인 '포커스 온 더 패밀리'의 제임스 돕슨 목사 역시 "절대로 매케인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08년 대선 당시 아버지의 날 연설에서 본인의 기독교적 신앙관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 바 있다.

매케인은 당시 연설에서 오늘날 미국의 아버지들을 격려하면서 "굳건한 반석 위에 우리의 집을 짓자"며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바 있다.

매케인은 평소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품격과 예의를 중시한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 2008년 11월 대선 패배 연설을 하면서 당선자였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며 오바마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매케인은 과거 CNN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항상 옳지도 않았고, 실수도 있었겠지만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한 바 있다. 그만큼 자신의 부족함 역시 인정했던 인물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낸 회고록의 제목은 '쉼없는 파도(The Restless Wave)'.

그는 뇌종양 판정을 받고나서 회고록에 마지막 고언을 남긴다.

"오늘날 시대는 겸손의 결핍이 심각하다. 겸손은 먼저 자신을 알고 이해하는데서 시작된다."

책 제목처럼 매케인의 늘 파도가 몰아치는 인생이었다. 그러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고 늘 소신을 지키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데는 그 안에 기독교적 가치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케인의 죽음을 두고 지금 온 미국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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