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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열심히' 뛸 수 있는 유일한 동물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의 신체 능력은 거의 대다수 분야에서 열세다. 그런데 인간에겐 비밀 병기가 있다. 바로 지구력이다. 지구력에 있어서만큼은 인간이 다수의 동물을 압도한다.

아주 오래 전, 인류는 이 지구력을 활용해 동물을 사냥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사냥감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추격하는 것이다. 사냥감이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도망치다 지친 사냥감이 쓰러지면 그 때, 큰 힘 들이지 않고 붙잡는다. 최근 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이다.

영국에선 매년 인간과 말이 경합하는 35km 마라톤 경주 대회가 열린다. 경주 초반엔 말이 인간을 아득하게 앞서 내닫지만 30km가 넘으면 지구력이 떨어져 인간에게 지기도 한다. 만약 50km 경주를 벌이면 인간이 거의 확실히 이긴다고 한다. 인간이 이처럼 놀라운 지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요인은 뭘까.

과학자들에 따르면 네 발 보행보다는 두 발 보행이 지구력 발휘에 유리하다. 몸 전체에서 흘리는 땀이 기화되면서 체열을 식히는 인간의 특징도 큰 몫을 차지한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동물들은 혀를 길게 빼내고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행위로 몸의 열을 발산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달리면서 몸을 식힐 수 없다. 쉴 틈을 주지 않고 추격하면 동물들은 오버히트 상태에 빠져 쓰러지게 마련이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부르는 현상도 인간 지구력의 원천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얼마 가지 않아 숨이 차고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은 사점(dead point)을 맞는다. 그런데 사점을 넘기면 몸이 가뿐해지고 심지어 희열감을 느낄 수도 있다. 4분~30분 정도 지속되는 이 현상이 러너스 하이다. 달리기 애호가 중 상당수는 러너스 하이에 대해 "매우 짜릿하다. 그 맛에 달리기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러너스 하이에 영향을 주는 물질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엔돌핀이다. 호르몬의 일종인 엔돌핀은 통증 억제 효과가 마약인 모르핀보다 훨씬 강하다. 현대인은 엔돌핀이 주는 짜릿함을 즐기며 운동을 한다. 반면, 수렵과 채집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시절의 인간에겐 엔돌핀 분비가 고통스러운 추격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진통제였을 것이다.

고대 인류는 무릎이나 발목이 아프다고 달리지 않으면 굶어죽기 십상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엔돌핀을 진통제 삼아 사냥감을 추격하는 사냥꾼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장엄하지 않은가.

연초가 되면 많은 이들이 운동을 시작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입문할 수 있는 것이 마라톤이다. 그래선지 오렌지카운티를 포함한 남가주엔 여러 한인 마라톤 클럽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쩌면 마라톤이야말로 잠들어 있던 인간의 본능과 비밀 병기를 깨우는 운동이 아닌가 싶다.

뛴다는 행위는 인간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나보다. DNA에 새겨진 숙명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연초가 되면 열심히 일하자는 말을 "올해도 열심히 뜁시다"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끈기있게 오래 뛰어야 한다는 것은 운명처럼 우리에게 채워진 족쇄일 수 있다. 그러나 지구력을 발휘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올해도 우리 앞에 펼쳐진 인생이란 마라톤 코스를 내달려보자. 숨이 턱에 차고 다리가 아파도 달릴 수 있는 힘을 줄 각자의 엔돌핀도 챙겨가면서 말이다.


임상환 / 사회부 부장·OC 선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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