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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얼굴도 없는 독립운동 후원자들…뉴욕에 잠들어 있다

67주년 광복절 특별기획

퀸즈 마운트올리벳 묘지
한인 노동자 수십 명 안장
고단한 이민의 삶 속에서도
'신한회' 등 통해 성금 보내


맨해튼에서 미드타운터널을 지나 퀸즈로 들어오면 수많은 묘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매스페스의 마운트올리벳 공동묘지다. 1850년 조성된 71에이커 넓이의 이 묘지에는 약 19만 명이 안장돼 있다. 그러나 안치자들 가운데 1900년대 초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한 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대륙으로 건너온 한인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일제시대 때 피땀 흘려 번 돈을 조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는 비사는 묘비 없는 시신만큼이나 오랜 세월 쓸쓸하게 묻혀 있었다.

제67주년 광복절을 닷새 앞둔 지난 10일, ‘웨스트론’이라고 이름 붙여진 묘지 동쪽의 끝자락. 영문으로 돼 있는 수천 개의 묘비 중 ‘렴(염)세우묘’라고 한글로 적힌 묘비가 눈에 띈다. 그 옆에는 선명하게 ‘대한인’이라고 적혀 있다. 북쪽으로 10m쯤 떨어진 곳에 ‘대한인 황긔(기)환’이라는 묘비도 보인다. 이 묘비에는 ‘Born In Korea, Died April 18. 1923’이라고 주인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안치자 명단에 따르면 렴씨는 1923년 8월 34세, 황씨는 같은 해 4월 4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뒤 이곳에 안장됐다. 이들은 아무 연고도 없이 이국땅에서 홀로 묻힌 노동자들이었다.



묘비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장철우(73) 목사다. 1921년 미동부 최초로 세워진 뉴욕한인교회에서 최근까지 8년 동안 시무했던 장 목사는 4년 전, 초기 교인명부와 ‘뉴욕한인교회 70년사’를 살펴보다가 일제시대 때 많은 노동자 출신 교인들이 이 묘지에 묻힌 것을 알게 됐다.

교회 70년사에는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하다가 가정도 없이 홀로 떠돌다가 교회에 온 한인이 있다.(중략) 1920년대 교인명부를 보면 적지 않은 교인들이 연로하거나 혹은 병들어 세상을 뜬 것이 눈에 띈다. 이들은 롱아일랜드(당시 매스페스는 롱아일랜드에 포함됐다)에 있는 올리벳 공동묘지에 장지를 정했다’고 나와 있다. 렴씨와 황씨도 이들 중 하나였다.

장 목사는 “안치자 명단을 확인했더니 1920~1930년 사이 김·이·박·최씨 등 한인 성을 가진 채 이곳에 묻힌 사람이 40여 명에 달했다”며 “대부분 묘비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마운트올리벳의 데이비드 기글러 디렉터는 “당시 묘비가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했거나 연고 없는 이민자였다”고 말했다.

전문가와 사료에 따르면 이들 노동자는 뉴욕의 민간외교단체 ‘신한회’와 미주 독립운동단체 ‘국민회’ 등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보탰다. 한국 독립기념관 홍선표 책임연구원은 13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하와이에서 뉴욕까지 갔던 노동자들은 거의 모두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 참여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을 직접 만난 한인도 있다. 1956년부터 컬럼비아대에서 유학한 장혜원(83) 전 컬럼비아 의대 교수는 “당시 뉴욕한인교회 건물에는 노동자 출신 70대 할아버지 3명이 살고 있었다”며 “이들 중 이두형 할아버지는 ‘해방 전 모든 재산을 이승만 전 대통령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다’고 하셨고, 양문희 할아버지는 '친형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어 힘을 보탰다'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했다.

강이종행 기자 kyjh69@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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